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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 히치콕에 빠졌던 대학생, 작가주의 감독의 대명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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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 히치콕에 빠졌던 대학생, 작가주의 감독의 대명사가 되다

입력
2020.02.01 10: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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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깐느 박’ 박찬욱 

 ※ 한국영화가 지난해 탄생 100년을 맞았습니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며 영화보다 재미있는 한국영화 100년의 이야기를 영화전문가를 통해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박찬욱 감독이 2009년 제62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뒤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찬욱 감독이 2009년 제62회 칸 영화제에서 영화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뒤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찬욱이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선 건 영국 출신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를 접하면서부터였다. 한때 미술평론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서강대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당시 1학년 때 ‘화녀 82’(1982)에 충격 받아 김기영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됐다. 이후 3학년 겨울방학 때 교내에서 열린 히치콕 영화제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상영된 ‘현기증’(1958)을 보고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현기증’을 보면 파도 치는 장면조차 히치콕이 ‘이렇게 쳐, 이번엔 저렇게 쳐’하면서 직접 연출한 것처럼 느껴진다. (웃음) 그만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컨트롤된 영화라고 할까. 그런 식으로 영화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다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주성철 엮음 ‘데뷔의 순간’)

학교에 영화과가 없었지만 박찬욱은 사진 동아리 서강회와 서강영화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다방면의 영화를 섭렵하고 도서관에서 영화 서적을 독파해가며 영화지식을 쌓아나갔다. 영화 관련 서적 번역이 드물었던 시절, 박 감독은 책 뒤쪽 도서카드에 이름이 기록된 영화광들을 만나 교분을 쌓았고 함께 집에서 비디오를 보는 일로 소일했다. 끝내 완성되진 못했지만 단편영화를 한 편 작업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가수 이승철 주연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 데뷔식을 치렀다.
박찬욱 감독은 가수 이승철 주연 '달은 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 데뷔식을 치렀다.

 ◇히치콕에 반한 영화광 감독 

졸업 후 그는 유영진 감독의 ‘깜동’(1988)에 연출부 막내 스태프로 충무로에 뛰어든다. 이때 영화의 세컨드 조감독이 뒷날 ‘엽기적인 그녀’(2001)와 ‘클래식’(2003)을 연출하는 곽재용 감독이었고, 그 인연으로 곽 감독의 데뷔작 ‘비오는 날의 수채화’(1989)에 조감독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죽을 쑤고 있던’ 시절, 충무로의 제작환경과 후진적인 관행은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장가는 갔고 독에 쌀은 떨어지고 하여’ 조감독 생활을 그만두고 현장을 떠났다. 그는 한동안 영화사 기획실 직원으로 일하며 외화 자막 번역, 보도자료ㆍ포스터 제작, 긴 영화를 짧게 재편집하는 일로 밥벌이를 했다. 이때를 두고 박 감독은 이렇게 술회한다. “가난한 시인이 출판사 편집장 노릇을 호구지책으로 삼는 일과 비교하고 싶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내심 잘 알고 있었다. 퇴근 후 시를 쓸 수는 있지만 퇴근 후 영화를 찍을 수는 없으니까”(박찬욱 저 ‘박찬욱의 몽타주’)

스물아홉살 박찬욱은 초저예산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으로 감독 데뷔식을 치른다. 화가 파울 클레의 잠언을 제목으로 내놓은 첫 작품은 스스로도 ‘흑역사’라 인정할 정도로 처참한 실패작이었다. 본래 원하던 배우 최재성을 캐스팅할 수 없었기에 대신 제작자 추천으로 당시 방송출연 금지 상태였던 가수 이승철을 주연으로 삼았는데, 촬영 며칠 전 첫 대면에서 이승철의 첫 질문은 이랬다. “영화 줄거리가 뭐에요?” ‘천장지구(1990)처럼 만들어달라는 제작사의 입김과 감독 특유의 B급 취향이 뒤섞인 이 불균질한 괴작은 이승철 팬들이 몰려와 자리를 채운 상영 첫 회 이후에는 완전히 관객이 끊겼고, 어느 언론에서도 평을 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충무로의 젊은 영화인이었던 이현승 김성수 여균동 감독은 작품의 키치 감성과 실험적 시도를 높이 평가하며 의기소침해있던 박 감독을 격려했다. 훗날의 ‘액션키드’ 류승완 감독 또한 이 영화에 자극 받아 박 감독의 문하로 들어와 박 감독의 다음 작품인 ‘3인조’(1997)의 연출부 생활을 하게 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박찬욱 감독에게 처음으로 흥행의 단맛을 안겨줬다. CJ ENM 제공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박찬욱 감독에게 처음으로 흥행의 단맛을 안겨줬다. CJ ENM 제공
박찬욱 감독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영화 ‘올드보이’.
박찬욱 감독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영화 ‘올드보이’.

 ◇참담한 데뷔작, 그리고 성공 

‘3인조’의 메가폰을 잡기까지 박 감독은 영화평론가로서 활발히 평론을 쓰고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영화음악’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케이블채널에서 신작 소개를 하는 등 방송 활동으로 5년의 공백기를 보냈다. 갖가지 고전 영화들을 세련된 논리와 문체, 방대한 영화지식으로 해부한 그의 글은 젊은 영화광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는데, 이를 한데 묶어 1994년 출간한 평론집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 드롬’은 2005년 개정증보판 ‘박찬욱의 오마주’로 재발간됐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도 박 감독은 ‘3인조’ 각본을 공동 집필한 이무영과 함께 ‘박리다매’라는 팀을 이뤄 ‘휴머니스트’(2001), ‘간첩 리철진’(1999), ‘아나키스트’(2000) 등의 각본을 잇달아 써내려 나갔다. 이때 집필한 수많은 각본 중 하나가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2000)였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이후에 내가 만든 영화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영화가 아니었다고들 말하기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다시 말하고 싶어요. (중략) 예술적인 성취감과 보람을 느꼈던 영화고, 그렇기에 나의 작품 세계를 하나의 도시라고 본다면 ‘복수는 나의 것’(2002)이나 ‘박쥐’(2009) 못지않게 굉장히 중요한 건물이라고 생각해요. ‘복수는 나의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이 가져다 준 선물이죠.”(이동진 저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그 영화의 시간’)

영화사 명필름이 박상연 작가의 원작소설 ‘DMZ’의 영화화와 감독 직을 제안하기 전부터 분단현실은 박 감독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박광수 감독의 ‘베를린 리포트’(1991)가 발표되면서 무산됐지만, 서베를린 주재 남한 방송국 특파원과 북한 여성 플루티스트의 로맨스를 그린 각본을 쓰기도 했고, 북한에서 내려온 지적장애 간첩이 국가보안법으로 사형 당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구상한 적도 있었다. B무비 색채가 농후했던 이전과는 달리 “표현보다는 소통을, 소수 마니아보다는 다수 대중을, 자의식보다는 테마를, 연출보다는 연기를, 스타일보다는 감정을, 미학보다는 정치학을 중시”하며 ‘웰메이드‘를 지향하기로 작심한 결과물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9주 연속 흥행 1위의 순풍을 타고 관객 589만명을 동원해 당시 흥행 기록을 갖고 있던 ‘쉬리’(1997)를 넘어섰다. 또 박 감독에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주며 수렁에 빠져있던 그의 필모그래피를 구원해냈다.

재기에 성공한 박 감독의 다음 행보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완벽히 배반하는 것이었다. 카메라의 초점은 분단 문제에서 계급 문제로 옮겨갔다. 국경을 넘어선 동포애와 휴머니즘을 그렸던 전작에 대한 반작용이었을까. 그는 소통의 부재와 단절, 계급 간의 괴리를 냉혹하고 건조한 톤으로 다룬 하드보일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예술적 스타일과 작가적 비전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한국 상업영화의 한계점을 돌파한 걸작 ‘복수는 나의 것’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평단의 찬사와 영화광들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최소의 표현으로 최대의 효과를’ 추구한 영화의 미니멀리즘과 박 감독의 작가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복수는 나의 것’은 16만4,000명으로 흥행 참패를 겪었고, 박 감독의 경력은 다시 암흑기로 빠질 위기에 처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박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김민희와 김태리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인다. CJ ENM 제공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박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김민희와 김태리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인다. CJ ENM 제공

 ◇한국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 

“여기서 복수는 소재에 불과합니다. 진짜 테마는 역시 ‘구원’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꽤나 미니멀했던 전작에 비해 신작은 제법 럭셔리하답니다. 대사도, 음악도, 색채나 카메라 움직임도 풍성한 영화죠. 전작이 ‘무반주 첼로 조곡’이었다면 신작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입니다.”(‘박찬욱의 몽타주’)

‘복수 3부작’의 두 번째 장인 ‘올드보이’(2003)는 그해 11월 21일 전국 170개 상영관에서 개봉해 327만 관객을 모으며 전작의 부진을 씻어냈다. 그러나 흥행 성공이 끝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필름 마켓에 출품된 ‘올드보이’는 2004년 제57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됐다가 이례적으로 경쟁부문으로 옮겨졌다. 당시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와 심사위원장 쿠엔틴 타란티노가 ‘올드보이’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한다. ‘올드보이’는 칸영화제에서 2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국제무대에서 큰 상을 수상한 감독에게 이전에 없었던 창작의 자유가 주어졌다. ‘친절한 금자씨’(2005)로 ‘복수 3부작’을 마무리 지은 박 감독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 상을 수상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7), 다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심사위원상을 거머쥔 ‘박쥐’(2009), 할리우드 진출작 ‘스토커’(2013)와 근작 ‘아가씨’(2016)를 발표하며,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이 됐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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