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장의 각종 제재 사안에 자문 역할을 하는 제재심의위원회(이하 제재심)가 대규모 원금손실을 부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판매 은행인 우리ㆍ하나은행 최고경영자(CEO)에게 중징계를 내릴 것을 권고했다. 내부통제 실패의 최종 책임이 CEO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라임자산운용 등 사모펀드발(發) 금융 사고가 잇따르는 시점에서 이른바 ‘CEO 리스크'가 전 금융권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30일 열린 DLF 관련 세 번째 제재심에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DLF 판매 당시 하나은행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지난달 말 두 사람에게 문책경고 방침을 사전 통보한지 약 한 달 만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조만간 제재심의 결정을 참고해 은행장들에 대한 최종 제재 수준을 확정할 예정인데, 제재심의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난 16일부터 열린 총 세 차례의 제재심에서 금감원과 은행들은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한 금융회사지배구조법과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 법 시행령을 근거로, 결국 내부통제의 실효성이 부족한 것은 경영진 책임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반면 은행들은 현행 법 규정 만으로는 CEO에 책임을 물을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발해 왔다. 내부 통제에 대한 CEO 책임을 명시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또 CEO가 상품 판매 의사 결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은행들은 강조했다.
그럼에도 제재심이 중징계를 결정한 것은 내부통제 시스템 마련에 실패한 책임은 결국 CEO가 져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특히 DLF에 이어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 등 사모펀드 관련 사고가 연달아 터지고 있어 금융사를 향해 악화된 여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금감원 노조는 “윤석헌 원장이 CEO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정의를 실현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금감원이 두 은행장의 중징계를 확정하면, 파장은 금융권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라임자산운용만 피해 예상액이 1조원을 훌쩍 넘기는 등 DLF보다 손실 규모가 크고 상당수의 은행과 증권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주요 은행들이 보유한 라임 펀드 잔액은 우리은행 5,000억원, 신한은행 3,940억원, 하나은행 1,235억원, NH농협은행 461억원 등이다. 특히 신한금융투자의 경우 라임의 불법 행위에 함께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검찰 수사 가능성까지 높아진 상태다.
은행 측은 단순 판매처이며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항변하지만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받았다”는 불완전판매 관련 피해자의 주장이 잇따르고 있어 제2의 DLF사태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DLF에서의 잣대를 라임 등 다른 금융 사고들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CEO에게 책임을 묻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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