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인생 황혼 노래할 것”
‘내 나이 열하고 아홉살에 / 첫사랑에 잠 못 이루고 (…) 내 나이 스물하고 아홉살엔 / 내 사랑을 나는 찾았고 (…)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 / 난 그땐 어떤 사람일까’
칠순을 지나 세 살을 더 먹은 가수 이장희는 30일 서울 신문로 한 공연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지막하면서도 옹골찬 목소리로 20대 시절 쓴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불렀다. 가수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준비하며 마련한 자리에서였다. 1974년 처음 작곡한 이 곡에 대해 “어느 대학 초청 공연을 앞두고 3시간 만에 작곡했는데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게 뭔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식 가수 데뷔는 1971년이지만 아마추어 가수로 공연을 시작한 게 1970년이니 올해로 딱 50년이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기까지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한 건 단 3년뿐인데도 그는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같은 굵직한 히트곡을 남겼다. 김완선이 불렀던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도 그의 곡이다. 그는 “49년이나 51년이나 뭐가 다르냐고 할 수도 있지만 20대 초반에 데뷔해 벌써 50년이 됐다는 게 감격스럽다”고 했다.
2010년 MBC ‘무릎팍도사’ 출연과 이듬해 ‘세시봉’ 열풍을 통해 가수 활동을 다시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 그간 꾸준히 공연을 해온 터라 이번 무대가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지만 그는 “여태까지 음악 생활을 정리하고 내 인생의 굴곡을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가수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노래하는 게 “너무 좋아졌다”고 했다. 한동안 타인의 시선이 불편해 오랫동안 길러왔던 콧수염까지 깎아버렸지만 시간이 흘러 마음가짐도 많이 바뀌었다. 이젠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는 “가수로서 지금이 절정일 수 있다”고도 했다.
이장희의 노래는 바로 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삶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일상의 언어로 노래하려 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제 황혼의 나이가 아닌가 싶다. 바다에 적당히 구름이 껴 있고 수평선 위로 황혼이 붉게 타오르는 순간이 지금이다. 허무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지만 안온한 기분도 있다. 그런 감정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있다”
매일 하루 3시간 이상 음악을 들을 정도로 음악에 빠져 살지만 정작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자연이다. 2004년 미국에서 돌아와 줄곧 울릉도에 사는 이유다. “오래 전 미국에서 지내다 잠시 귀국해 설악산 속 암자에서 3개월간 산 적이 있다. 그때 달밤에 산 중턱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뭔가 생각해봤다. 명예인가, 돈인가, 아니면 여자인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자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두 번째다. 음악가로서 남은 마지막 소망이 있다면 늘 그랬듯 내가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담은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것이다.”
이장희의 50주년 기념 공연은 3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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