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8시57분 출발… “中과 협의 마무리 안 돼”
신종 코로나 사태 장기화 속 정부 번번이 엇박자 대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사태가 장기화하며 정부의 엇박자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체류 중인 국민을 이송하는 전세기는 출발이 지연됐고 “데려오겠다” 공언했던 유증상자들은 결국 현지에 남게 됐다. ‘과도할 정도로 대응하자’는 의욕이 앞서 부처 간 면밀한 조율과 같은 기본적인 사안을 놓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당초 우한 및 인근 지역에 체류하는 교민을 국내로 데려오기 위한 전세기 중 첫 번째 편을 30일 오전 10시 띄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출발 예정 시각을 8시간 남긴 오전 1시(현지시간) “항공 일정이 변경됐다”는 긴급 공지가 탑승 대상자들에게 전해졌다. ‘중국과의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결국 첫 비행기는 이날 오후 8시 57분에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했고, 출발 전세기도 2대에서 1대로 줄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28일 관련 대책을 발표할 때 ‘전세기 투입 날짜 및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국민 불안 최소화 등을 위해 ‘30, 31일 전세기 4편을 투입한다’는 잠정안을 서둘러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다른 국가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대응 능력 자체 문제가 아니라 협의 상대인 중국이 관련 사안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상대가 있는 문제’라는 점이 면죄부가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전세기 탑승자에 발열, 기침 등 유증상자를 포함시킬 것인지를 두고 관계 부처가 하루 만에 정반대의 얘기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외교부는 28일 “의심증상자는 전세기에 탑승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무증상자와 따로 탑승하는 식으로라도 유증상자를 태워오겠다”고 자신했다.
신종 코로나 관련 정부 대책에 국민적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원보이스 실종’은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과하게 대응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정확한 상황 판단이나 면밀한 메시지 조율보다는 의욕을 보여주는 쪽에 부처의 관심이 쏠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따라 나온다.
정부 내부에서 엇박자가 나면서 중국의 신경만 자극한 측면도 없지 않다. 외교부 관계자는 “유증상자 문제를 중국과 협의 중인 상황에서 ‘데려오겠다’고 내지르면 (대화가) 어려워지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유증상자 국내 이송은 결국 중국 정부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불발됐다.
이송 교민 격리 장소를 둘러싼 정부 대응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정부는 28일 오후 정세균 국무총리가 주재한 관계장관회의 종료 후 격리 장소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종료되자 “확정된 것이 없다” “여러 안을 검토 중이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날 오전부터 충남 천안의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으로 정해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행정안전부, 국무총리실 등은 모두 “소관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했다.
하루가 지나서야 정부는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우한 이송 국민을 수용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사전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생략됐던 터라 지역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천안시민들의 반대여론이 예상보다 커 장소를 황급히 바꾸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면서 정부의 장소 선정 기준 신뢰도 역시 크게 떨어지게 됐다. 여권 관계자조차 “(주민 반발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던 만큼 조금 더 일찍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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