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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53> 응고롱고로의 미스터리

입력
2020.01.31 12:41
수정
2020.01.3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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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동물 코끼리 빼고 분화구 안 벗어나

사자 다니는 캠프에 보호시설도 없어 긴장

짝짓기 계절을 맞아 한 숫사자가 암사자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짝짓기 계절을 맞아 한 숫사자가 암사자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본 거대한 분화구 전경. 이곳 입구로 들어가면 오후 4시 전에 출구로 빠져나와야 한다.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본 거대한 분화구 전경. 이곳 입구로 들어가면 오후 4시 전에 출구로 빠져나와야 한다.

탄자니아 현지가이드 토니의 손목시계에 찍힌 해발 고도는 2,545m였다. 공기도 차가웠다. 아프리카에서 외투를 걸쳐야 했다. 백두산 천지보다 30배나 큰 세계 최대의 분화구, 응고롱고로 캠프사이트였다. 응고롱고로는 마사이어로 소 울음소리를 소가 “응고롱고롱고롱고~~”하면서 운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1,300m인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하룻밤을 보낸 이곳 산등성이 캠프는 사파리보다 더한 야생, 그 자체였다. “더운 물이 나온다”는 감언에 속아서 20분동안 차가운 화장실 겸 샤워실에서 덜덜 떨었다. 비누는 칠했는데 더운 물은 찔끔 나오는데 그쳐 찬 물로 마무리 해야 했다.

세계인이 한데 모인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 바깥 한쪽에서 캠프파이어 불꽃이 피어올랐다. 문명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불이 꺼지기 무섭게 모두 텐트 안으로 기어들었다. 바깥은 암흑, 텐트는 점 하나에 불과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침낭 안에서 귀만 열어놓고 있는데, 텐트에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주인공은 얼룩말이었다. 텐트 밖으로 나가보니 30개 정도의 텐트 사이로 얼룩말 5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줄 무늬를 멀리서 볼 때는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둠속 1, 2m 거리의 얼룩말은 달랐다.

얼룩말들이 한밤중 응고롱고로 캠프사이트에서 풀을 뜯고 있다.
얼룩말들이 한밤중 응고롱고로 캠프사이트에서 풀을 뜯고 있다.

손님은 얼룩말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버팔로라고 불리는 물소가 화장실 옆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사자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물소는 캠프 가장자리에 1마리 더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안전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캠프 운영자는 이런 곳에 여행객을 방치하고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았다. 다시 텐트로 줄행랑 쳤다. 밤새 풀 뜯는 소리에 밤을 설쳤다. 초식동물들은 아침이 오면 그렇게 좋아한다더니, 내가 꼭 그 모양이다.

스릴 만점의 캠프 체험은 세렝게티에서 이미 시작됐다. 이틀 전 세렝게티 응야니(Nyani) 캠프사이트에 도착하니 이미 먼저 온 이방인들이 쳐 놓은 텐트가 15개나 있었다. 몽구스와 가젤이 텐트 주위로 어슬렁거리다 인기척에 놀라 달아났다. 콘크리트 건물이라고는 식당과 주방, 샤워장 겸용 화장실이 전부였다.

하마들이 웅덩이에 모여있다. 대낮에 하마들이 물을 찾는 이유는 피부가 약해서다.
하마들이 웅덩이에 모여있다. 대낮에 하마들이 물을 찾는 이유는 피부가 약해서다.

그런데 아무리 목을 빼고 봐도 울타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나 싶었다. 분명 사자 무리가 어슬렁거리는 야생 한가운데서 하룻밤을 자야 하는데 전기 철조망은커녕 키 작은 나무 울타리조차 없었다. 토니한테 물어보니 웃기만 했다.

야생에 왔으니 야생의 법을 따라야겠지만 이게 사람의 법인지 동물의 법인지 알 길이 없었다. 안전하니까 울타리도 없겠지만 밤새 화장실 가는 건 포기했다. 이따금 야행성 맹수들의 울음소리가 낮게 깔리는 한밤중 사바나에서 20m 거리의 화장실은 멀어도 너무 멀었다.

하이에나들이 응고롱고로에서 맹수가 사냥한 먹이를 훔쳐 달아나고 있다.
하이에나들이 응고롱고로에서 맹수가 사냥한 먹이를 훔쳐 달아나고 있다.

세렝게티에서도 해 뜨기 전에 일찌감치 잠을 깼다. 2인용 텐트 안 침낭 속에서 귀만 열고 한참을 빈둥댔다. 야생의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살려면 청각이 예민해야 했다. 텐트 지퍼를 열고 고개만 뺐다. 옹기종기 텐트 위로 별이 쏟아졌다. 남반구에 와서 북극성을 찾겠다고 호들갑을 떨던 때가 까마득하다. 남십자성을 쫒고 있었지만 워낙 별자리에 문외한이라 포기했다.

사파리 지프차들이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가로질러 야생동물을 찾고 있다.
사파리 지프차들이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가로질러 야생동물을 찾고 있다.

4륜 구동의 8인승 사파리지프차가 응고롱고로 분화구로 내려갔다. 분화구를 한 눈에 보는 느낌도 좋았는데, 동물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 분화구 아래는 동물의 천국이다. 사시사철 신선한 물과 풀, 동물이 지내기 딱 좋은 기온이 이어져서다. 이곳 동물들은 모두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죽는다. 이곳에 들어오거나 벗어난 흔적이 없다. 동물의 천국은 태생 자체가 미스터리다.

사자 코끼리 표범 코뿔소 물소 빅5가 모두 살고 있는 이곳에 예외인 동물이 딱 2종류가 있다고 했다. 신선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코끼리와 개코원숭이만 어쩌다 능선을 넘어 분화구 바깥으로 외출한다.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는 흙길도 코끼리가 다니는 길을 따라 만들었다고 했다.

아프리카 빅5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발견한 코뿔소. 아프리카 맹수들은 하나같이 엉덩이가 무거웠다.
아프리카 빅5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발견한 코뿔소. 아프리카 맹수들은 하나같이 엉덩이가 무거웠다.

빅5 중 세렝게티에서 보지 못한 녀석은 코뿔소였다. 기필코 이 녀석을 눈에 담아가야 했다. 가젤과 얼룩말, 누가 평원을 누비고 있었다. 이제 녀석들은 동물로 보이지도 않았다. 지프차도 서지 않았다.

토니가 갑자기 황급히 차를 밟았다. 코뿔소가 보인다는 무전이 들어왔다고 했다. 코뿔소는 길에서 400m 안쪽 풀숲에 있었다. 육안으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망원렌즈를 최대한 끌어당겨보니 하늘 위로 솟은 코뿔소 뿔이 식별됐다. 이 녀석도 엉덩이가 무거워 움직이지 않았다.

영화 '라이온킹'에 나온 '품바'와 똑 같은 혹돼지가 응고롱고로 초원에 앉아 쉬고 있다. 현지어로 돼지는 '기리'라고 불린다.
영화 '라이온킹'에 나온 '품바'와 똑 같은 혹돼지가 응고롱고로 초원에 앉아 쉬고 있다. 현지어로 돼지는 '기리'라고 불린다.

하마들이 등판과 콧구멍만 내놓은 채 물 속에 떼를 지어 가라앉아 있었다. 등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웅덩이를 건너가도 될 듯싶었다. 영화 ‘라이온 킹’에서 본 돼지 2마리도 작은 웅덩이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품바”라고 불렀지만 현지어로 돼지는 ‘기리’다.

하이에나는 역시 양아치 근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냥능력은 ‘꽝’, 지구력은 ‘짱’인 이 동물은 어디서 고기 한 덩어리를 물고 한적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새끼 사자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다. 주위를 경계하던 어미 사자가 새끼를 깨운 후 자리를 잡고 수유 자세로 누웠다.
새끼 사자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다. 주위를 경계하던 어미 사자가 새끼를 깨운 후 자리를 잡고 수유 자세로 누웠다.

마침 사자는 짝짓기 철이었다. 하루에 18회씩 4일간 짝짓기를 한다는 사자들이 여기저기서 암수 한 쌍씩 어디론가 사라졌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는 얼룩말 새끼는 사자의 공격도 피한다고 한다. 뜀박질이 어미보다 빨라서 사자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침 1월 31일은 멸종 위기 동식물 보호를 위한 ‘얼룩말의 날’이다.

얼룩말들이 풀숲으로 들어가고 있다. 새끼 얼룩말은 어미보다 빠르다고 한다. 마침 1월31일은 멸종위기 동식물 보호를 위해 제정된 '얼룩말의 날'이다.
얼룩말들이 풀숲으로 들어가고 있다. 새끼 얼룩말은 어미보다 빠르다고 한다. 마침 1월31일은 멸종위기 동식물 보호를 위해 제정된 '얼룩말의 날'이다.

모든 차량은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분화구를 벗어나야 한다. 입구와 출구는 외길이다. 낮에는 동물의 천국이었는데 어둠이 내리는 응고롱고로에서는 목숨을 건 추격전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글ㆍ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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