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시대이다. 그런데 필요한 정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작년 한글날 주간에 시민들과 함께 공공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공공기관 홈페이지, 신문 기사문, 대기업 공지문 등 일부를 골라, 기차역과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잘 모르는 표현이 있는지 물었다. 20대에서 70대까지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20대는 특히 기업 공채 관련 글에다가 의견을 많이 남겼다. 예를 들면, ‘서류에 기재된 내용, 부적합한 사유, 기재 착오 및 누락, 연락 불능 등으로 발생한 불이익’ 등을 수정한 것이다. 참여자들은 ‘기재된 → 써진, 적혀 있는’, ‘부적합한 → 적당하지 않은’, ‘기재 착오 → 잘못 쓴, 잘못된’, ‘누락→ 빠짐’ 등으로 고쳐 썼다. 20대는 이런 표현이 좀 더 쉽게 적히면 좋겠다고 하였다.
사실 채용 과정에 쓰이는 정형화된 표현은 관습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취업에 청춘을 바치는 20대에게는, 인생을 결정할 말들이 모호하게 표현된 채 ‘착오로 인한 불이익은 본인에게 있음’이란 불공정하다. 소통이 안 된 원인은 글을 쓴 사람에게 있는데, 그 책임은 글을 읽을 사람에게 부담지우고 있다. 불행히도 20대는 그러한 관습에 거부할 권리가 없다.
공지의 목적을 되새겨 보면, 그 표현 때문에 읽을 이가 불편하거나 불이익을 겪으면 안 된다. 채용 공고에서 쓰는 정형화된 표현에 20대가 집중했다는 것은 독자로서의 불편함을 넘어 저항감으로 느껴진다. ‘소젖보다는 우유, 우유보다는 밀크’처럼, 언어에는 현실적인 위계가 있다. 모르는 말이 권력과 같을 때 이런 말들은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설 수 있다. 공공언어를 보며 누군가가 저항 운동을 떠올려서는 안 될 일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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