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30일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일부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김 전 실장은 2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되며, 유죄 판결을 받았던 일부 혐의가 무죄 선고될 것으로 보여 형량이 줄어들 전망이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인 김 전 실장 외에도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소영 전 문화체육비서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신동철ㆍ정관주 전 국민소통비서관 등이다.
전원합의체 소속 13명의 대법관(대법원장 포함) 중 다수인 11명이 이 사건에서 일부 혐의는 유죄이지만 다른 일부에서 법리 오해와 심리의 미진함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전원합의체가 유죄를 유지한 부분은 김 전 비서실장 등이 문체부 공무원 등에게 △예술위원 배제 지시를 전달하도록 한 것 △지원배제가 관철될 때까지 사업 진행을 중단하게 한 것 △지원 배제를 위반 명분을 발굴하도록 한 것 △지시에 따라 지원금 삭감안을 상정하도록 한 것 등이다.
그러나 전원합의체는 △공무원에게 각종 명단을 보내도록 한 것 △공모사업 진행 중에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까지 유죄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직권남용의 상대방(이 사건의 경우 지시를 받은 공무원)이 요청을 받고 단순히 협조하는 것까지 ‘의무 없는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만 성립하는데, ‘의무 없는 일’의 범위를 지나치게 폭넓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다.
김 전 실장은 재임 당시 지난해 청와대 수석들에게 블랙리스트 작성ㆍ실행을 지시하고, 김 전 장관 등과 공모해 문체부 고위인사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조 전 수석은 문예기금 지원배제 등 블랙리스트 대상자를 선별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에 통보한 혐의 등을 받는다.
이번에 전원합의체가 직권남용죄의 성립 요건인 ‘의무 없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 범위를 좁힘에 따라, 이번 사건뿐 아니라 사법농단 등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다른 사건도 영향을 받게 됐다. 검찰로서는 직권남용죄에서 유죄를 받아내기가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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