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루 만에 바뀔 수 있나”정부 오락가락 지정에 더 분노
정부가 29일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로 귀환하는 교민들의 국내 격리수용 시설로 충북 진천군 혁신도시 내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을 지정하자 지역 주민과 지자체, 지방의회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해당 지역에선 전날 주민 반발이 터져 나온 다른 지역을 거론하며 “천안이 반대하니까 힘없는 우리 쪽이 위험을 감수하란 것이냐”며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충북 진천군 덕산읍 충북 혁신도시 주민 300여명은 이날 오전 소문이 퍼지자 오후 들어 트랙터와 화물차 등으로 인재개발원 출입구를 막고 농성에 들어갔다. 앞서 이들은 진천군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충북 혁신도시는 아파트가 밀집해있고 대형병원도 없어 격리 수용시설로는 부적합한 곳”이라며 수용시설 지정 철회를 요구했다.
주민 서재석(56)씨는 “인재개발원은 반경 1km내에 아파트 6,300여 가구에 1만 7,000명이 넘는 주민이 살고 있고,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도 많아 오히려 바이러스 전파 확률이 높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천안이 반대하니까 하루 만에 군단위로 바꿨다는 게 더 화가 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농성 현장에서 만난 주부 이모(36)씨는 “좁은 지역에 인구가 몰려 있고 젊은 세대와 아이들이 많은 혁신도시에 격리 수용장소를 정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정부가 사전에 이곳을 둘러보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충북 혁신도시 거주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맘카페에는 “아파트가 코 앞인데 무슨 소리냐” “혁신도시 주민은 사람이 아니냐”는 등 비판 글이 줄을 이었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본보와 통화에서 “대승적 차원에서 우리 교민을 수용하는 게 맞다”면서도 “다른 데서 반발한다고 해서 거점병원도 없는 지역으로 바꾸면 주민들이 선뜻 수용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진천군의회도 이날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인근 음성군의회 일부 의원들은 이날 오후 주민들이 시위중인 인재개발원을 찾아 교민 격리 수용시설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인근 주민들도 아산시청을 항의 방문한 데 이어 트랙터 등 농기계를 동원해 경찰 인재개발원 진입로를 봉쇄했다.
이들은 "하루 만에 갑자기 천안 대신 아산으로 결정한 것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 수도 없다. 표가 적은 지역이라고 무시하는 거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오후 1시부터 농성에 들어간 주민들은 “아산지역 모든 시민단체와 기관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고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오세현 아산시장은 이날 오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천안에서 아산으로 번복된 이유에 대한 아산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정치적 논리와 힘의 논리에 밀려 아산으로 결정됐다는 점이 시민들의 상실감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합리적인 결정의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아산시와 아산 시민들은 정부 결정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덧댔다.
자유한국당 이명수(충남 아산갑) 국회의원은 성명을 통해 격리시설 선정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의원은 “경찰 인재개발원 인근엔 아파트단지를 비롯해 수많은 아산시민이 거주하는 등 여러 문제점과 제약 요인이 있어 격리 시설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권역별 또는 그룹별 분산 보호 ▦타부처 소관시설 추가 검토 ▦수요조사 뒤 보호시설 선정 판단 ▦질병관리본부와 업무 효율성 고려 등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아산시의회도 “해당 지자체와 아무 협의없이 중앙부처가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수용 지역을 선정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천안아산경실련은 “우한 송환 교민은 김포공항에서 가까운 정부 재난대피시설을 활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정부의 수용시설 확정 발표가 늦어지는 바람에 해당 지자체들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확인하느라 온종일 허둥대고 갈팡질팡했다. 충북도청 한 공무원은 “격리시설 입지가 확인이 안된 상황에서 언론 보도가 앞서가는 바람에 몇시간 동안 애를 먹었다”며 “당초 정했던 곳을 발표하고 해당 지역을 설득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부가 갈팡질팡하다가 오히려 혼란만 키운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아산·진천=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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