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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바이러스와의 전쟁

입력
2020.01.2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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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지난한 싸움

인수 공통 감염병은 갈수록 증가 추세

환경파괴가 부른 재앙 아닌지 돌아봐야

인천공항 검역대에서 28일 중국 지난에서 입국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집중 검역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인천공항 검역대에서 28일 중국 지난에서 입국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집중 검역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농업이 시작된 1만여년 전 신석기 시대 이후로 인류 역사는 세균, 바이러스 등이 일으키는 감염병과의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여 사는 데다 가축까지 기른 뒤로 이 병원체들은 전쟁보다 더 일상적으로, 더 괴멸적으로 인류의 생명을 위협했다. 가장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힌 천연두 바이러스는 20세기 들어서만 3억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1918년 대유행한 인플루엔자로 전 세계에 걸쳐 5,000만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 전쟁의 역사가 인류 패전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천연두는 1966년 세계보건기구(WHO)의 10년 내 박멸 계획에 따라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ㆍ보급되고 발병자 격리 등의 능동적인 대처법이 정착되면서 각 지역에서 차례로 정복돼 마침내 WHO는 1979년 “천연두 완전 퇴치”라는 개가를 올렸다.

소아마비를 낳는 폴리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기억할 인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다. 명문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30대 후반에 덜컥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렸지만 지지 않고 대권에 도전해 성공한다. 대공황 극복 등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으로서 업적이 즐비하지만 그 목록의 한 줄에 폴리오 바이러스와의 전쟁 선포도 포함된다. 실제 백신이 나온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 뒤이지만 그의 선언이 이제 거의 정복 단계에 들어선 WHO의 폴리오 바이러스 퇴치 노력의 마중물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바이러스 정복이 가능하려면 백신 개발이 필수다. 그러려면 그 바이러스가 우선 인간에게만 감염되어야 하고, 유형이 적어야 한다. 천연두, 폴리오 모두 자연조건에서는 인간에게만 감염되고, 천연두는 단 1종, 폴리오는 3종으로 종류가 제한적이다. 잠복기가 짧다든지, 감염 증상이 뚜렷한 것도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바이러스가 수도 없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동물에서 인간에게로, 급기야 인간 사이에 전염돼 나타나는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이다. 설사 백신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아닌 숙주동물을 전부 찾아내 대처할 방법이 없다. 동물 간에,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종이 생겨나 늘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와 싸워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백신 개발 등 의학적 대처 능력이 커진 것이나, 정보망이 촘촘해지면서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특정 감염병이 발병했을 때 그때그때 전투에서 싸울 이런 능력은 앞으로도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커진다고 해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인구는 80억을 향해 늘어만 가고 있고 지역 간, 국가 간 이동이 몇 십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해졌다. 숲이 파괴되고 인간의 거주 면적이 넓어지면서 무엇보다 야생동물과의 접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수 공통 감염병이 1980년대 이후 새로 확인된 인간 병원체의 65%를 넘는다”라는 지적은 이런 추세가 낳은 예기치 못한 결과다.

이 주제를 다룬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에서 미국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콰먼은 숲 속에서 바이러스들과 숙주인 동ㆍ식물은 “매우 밀접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확립”된 “상호의존적이며 우호적”인 관계라고 말한다. 숙주가 죽더라도 사체는 광활한 숲에 흡수되고 바이러스 역시 그때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들은 “나무들이 벌목되고 토종 동물들이 도살될 때마다 마치 건물을 철거할 때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서게 된다. “굶주린 바이러스”에게 “수십억 인체는 기가 막힌 서식지”다. 바이러스가 “특별히 우리를 표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는 것”이라는 그의 지적을 곱씹어 볼 때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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