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A씨는 얼마 전 자신의 원룸에 설치된 싱크대가 철거되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자진 철거’라는 집주인의 설명이 의심쩍었던 A씨는 뒤늦게 건축물대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해당 건물이 주택이 아니라 고시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속았다는 생각에 월세 인하를 요구했지만 집주인이 “조만간 다시 설치해 주겠다”며 버티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고시원은 보통 제2종근린생활시설 중 다중생활시설로 분류된다. 다중생활시설은 주택과 달리 공용 취사장 외 개별 취사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겉보기엔 원룸이라도 싱크대나 인덕션 등 취사시설 설치 자체가 불법이다. A씨의 싱크대가 갑자기 사라진 것도 이 같은 불법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B씨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주변보다 저렴한 시세에 끌려 원룸에 입주했다가 보증금 1,000만원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얼마 전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전입신고를 한 B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주소에 다른 사람이 먼저 전입해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알고 보니 집주인이 불법 ‘쪼개기’로 방 하나를 둘로 나눠 각각 임대한 것이다. 전입신고는 했지만 근저당 순위에서 밀린 이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사철’을 맞은 대학가에서 임대수익만을 위한 불법 건축물이 난립하고 있다. 문제는 불법은 집주인이 저질렀는데 피해는 입주한 학생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대학이 밀집한 서울 신촌과 왕십리, 신림동 일대에서 외관상 불법 증개축이 의심되는 건물 54곳의 건축물대장을 직접 확인해 본 결과 25채에서 ‘위반건축물’ 표시를 확인했다. 불법 증축, 불법 쪼개기, 불법 용도 변경에 이르기까지 건축물 관련 불법 사항을 총망라하는 수준이었다.
베란다 확장이나 옥탑방 등을 허가 없이 증축하는 경우 저렴한 조립식 패널로 짓는 것이 보통이다 보니 단열과 소음에 취약해 냉난방비 등 관리비 지출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가벽을 설치해 방을 쪼갠 원룸은 옆방의 소음과 진동이 그대로 전달된다. 여기에 더해 스프링쿨러와 경보 장치 등 소방 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화재 사고 발생시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 불법 증축의 경우 전입신고가 불가능하므로 유사시 보증금을 보호받을 길이 없고, 전입신고가 가능하더라도 주소지와 거주지가 다르거나 다른 세입자와 주소가 중복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계당국은 단속에 미온적이다. 신림동 고시촌을 관할하는 관악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건축법 위반 여부를 전수조사 한다는 것은 인력 문제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특히 불법 용도 변경이나 방 쪼개기를 확인하려면 방 내부에 직접 들어가야 하는데 거주자의 동의를 얻어야 해 단속이 어렵다”고 밝혔다.
금융 및 부동산 전문 법무법인 소속 이윤우 변호사는 “주변보다 시세가 낮다면 일단 의심하고 확인해야 하는데 계약 전엔 등기부등본으로 임대인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고, 건축물대장을 통해 건물의 용도가 적합한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계약 후엔 확정일자를 받아 계약을 증빙하고 전입신고를 통해 입주 사실을 증명해야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은 주소만 알면 스마트폰에서도 열람이 가능하다. 등기부등본은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건축물 대장은 정부24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확인할 수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이동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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