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27일(현지시간) 저소득층에 대한 비자 및 영주권 발급을 제한해 ‘재력 테스트’로 비판받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사실상의 반(反)이민정책에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개발도상국 출신 저소득층은 미국 비자 및 영주권 받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 집권 후 대법관 2명을 교체하면서 연방대법원의 보수 우위 구도를 굳힌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재선가도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한 성과물을 챙긴 셈이 됐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정부에 재정 부담을 줄 수 있는 저소득층의 비자 및 영주권 발급을 제한한 트럼프 정부의 이민 규제에 대해 5대 4로 효력이 있다고 결정했다. 지난해 이 규제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하급심의 결정을 뒤집고 정책 추진에 길을 터준 것이다.
문제가 된 정책은 트럼프 정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것으로, 비자나 영주권 발급을 제한할 수 있는 ‘생활보호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민법에는 ‘정부 지원에 주로 의존하는 사람’으로 규정돼 있는데, 그간 정부로부터 현금 지원을 받는 이들로 한정됐다.
트럼프 정부는 그러나 이를 식비 지원 프로그램인 ‘푸드 스탬프’, 저소득층 의료 지원프로그램인 ‘메디 케이드’, 주택지원금 등의 복지 지원을 받는 경우까지로 대폭 넓혔다. 이민심사당국은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도 비자나 영주권 발급을 거부할 수 있어 이민 신청자들은 확실한 소득원과 재력을 증명해야 한다. 교육 수준이나 영어 능력 등 트럼프 정부 들어 까다로워진 기준에 더해서 재산과 금융 상태까지 세밀하게 점검받게 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5월에도 고학력자와 기술자를 우대하는 능력 기반 이민정책을 발표했다.
트럼프 정부는 당시 이 방안을 발표하면서 “미국에 체류하길 원하는 외국인은 스스로 부양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뉴욕ㆍ코네티컷ㆍ버몬트주(州) 등은 이민 관련 단체와 함께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지난해 10월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은 “‘아메리칸 드림’에 혐오감을 주는 정책이자 배제의 정책”이라며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을 포함한 5명의 보수성향 대법관들은 하급심의 명령을 철회해달라는 트럼프 정부의 긴급신청을 이날 받아들였다.
연방대법원은 그간 이슬람 5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행정명령, 중남미 이민자의 망명 신청을 제한한 정책,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국방예산 전용 등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이민규제 정책에 대해 매번 5대 4의 결정으로 트럼프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이를 두고 “연방대법원이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대리인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꼬집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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