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볼리비아, 파라과이 국경에는 한반도 면적과 맞먹는 세계 최대 습지인 ‘판타나우’가 있다. 판타나우는 매년 우기인 11월부터 3월까지 80%가 물에 잠겨 있는 곳이다. 이 습지는 야생 생태계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약 3,000종의 식물을 비롯해 조류, 파충류 등 15만여종의 야생동식물이 이곳에 살고 있다. 세계적으로 매우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보인다.
하지만 판타나우는 현재 무분별한 개발과 재해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매년 여의도 면적의 1,500배에 달하는 면적이 영농을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으며, 작년 말 발생한 산불로 남한 면적의 5분의 1에 달하는 200만㏊가 소실되었다. 이곳 습지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생물들의 생존도 위협받고 있다. 습지가 줄어드는 것은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뜻한다. 이는 결국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늪과 습지대는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물을 깨끗하게 정화한다. 산호초와 맹그로브 숲은 파도를 막아주며 재해를 방지한다. 이탄습지는 육상 탄소의 30%를 저장하여 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 방지에 이바지한다. 전 세계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습지에서 식량을 공급받거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며 생계를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혜택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47조달러에 달한다.
람사르협약 사무국은 매년 2월 2일을 ‘세계 습지의 날’로 정하여 습지의 가치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올해 습지의 날 주제가 바로 ‘습지와 생물다양성(Wetlands and biodiversity)’이다.
지구 표면적의 6%에 불과한 습지는 전 세계 모든 생물종의 40%가 살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습지의 생물다양성은 해마다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 300년 동안 지구상 습지의 87%가 사라졌고 이로 인해 100만 종의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오염, 배수, 그리고 토지 개발이 습지 소실의 주요 원인이다.
이러한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습지를 보전하고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DGs), 아이치 생물다양성 목표(Aichi Targets) 등 여러 국제적 약속에서 습지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람사르 협약은 전 세계 2,300개가 넘는 습지를 람사르 사이트(Ramsar site)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최근 3년간 1,408개의 습지를 대상으로 한 전국 습지실태 조사 결과, 74개의 습지가 소실되고, 91개의 면적이 감소했다. 훼손이 확인된 165개 습지의 90%는 경작지로 이용하거나, 시설물 건축에 따른 인위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환경부는 습지 보전을 위한 정책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생태적 가치가 높은 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한편, 훼손지 복원 사업에 대한 투자도 확대한다. 아울러 환경영향평가 시 훼손 면적에 상응하는 대체 습지를 조성하도록 하는 습지총량제 도입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습지 건강성 평가, 인공습지 조성과 같은 기술개발을 통해 제도 도입의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경기 고양시에 있는 한강하구 장항습지를 람사르습지로 등록하고 습지도시를 추가 인증하여 국제사회에 습지보전 의지를 표명할 것이다.
우리나라 13번째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밤섬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여 60년대 개발 과정에서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도 1990년대 이후 철새도래지로 주목받아 서울시 차원의 보전 노력을 통해 현재 연중 86종의 새가 밤섬을 찾는다. 다양한 생물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며 아름다운 경관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습지를 파괴할 수도 있고, 생명력 넘치는 지속가능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 세계습지의 날을 맞아 습지와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습지 보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국민들에게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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