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자의 2인자로 군림했던 인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는 늘 ‘만약에~’라는 상상력이 가미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소재로 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말미에 주인공은 ‘육본(육군본부)으로 갈지 남산(중정)으로 갈지’를 두고 고민한다. 그가 육본이 아닌 남산으로 향했다면 지금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영화는 전체적으로 객관적 서사를 연결하는 듯 하지만 행간은 “오랫동안 민주혁명을 꿈꿨다”는 김재규의 법정 진술에 조금은 무게를 둔 듯 하다.
‘김재규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육본이 아닌 중정으로 향했더라면’‘그래서 10ㆍ26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하는 영화 후기들이 눈에 띄는 걸 보면 10ㆍ26 이후에도 또 다른 형태의 군부독재가 이어진 역사에 대한 아쉬움의 표출일지 모르겠다.
김재규 이야기에 평행이론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일본 전국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살해한 아케치 미쓰히데다. 때마침 NHK에서 그의 일대기를 다룬 대하 드라마 ‘기린이 온다’가 공개돼 인기를 얻고 있다. 미쓰히데는 주군 노부나가를 전국시대 최고의 무장으로 만든 책사다. 한편으로는 무장해제 상태이던 주군을 급습해 자살로 몰고 간 이른바 ‘혼노지(本能寺)의 변’을 일으킨 배신의 아이콘이다. 권력의 2인자로 군림하다 천하 통일을 꿈꾸고 이룬 반란이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으니 준비되지 않은 쿠데타라는 점에서도 김재규와 오버랩된다. 이런 어수선한 틈 속에서 패권을 잡고 천하통일을 이뤄낸 이는 다름아닌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보니 미쓰히데가 구상한 천하에 조선침략이 포함됐을지도 궁금해진다.
2인자 이야기는 사학자나 스토리텔러의 입장에서는 더 없이 좋은 소재다. 역사는 늘 그렇듯 승자의 입장에서 쓰이다 보니 여백의 미가 적지 않아 이야기를 메울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반면 현실적인 평가는 냉정하리만큼 엇갈린다. 김재규가 꿈꾼 민주주의나 미쓰히데의 천하는 빈틈이 너무 많다. 자신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조차 없었다. 굳이 쿠데타로 부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쓰히데의 모반은 성질 나쁜 주군이 자신에 행한 치욕적인 대우를 참지 못한 분노의 표출이었다는 게 정설이며, 김재규의 행동 역시 “차지철과 충성경쟁에서 지게 되니까 빵 하고 차를 쏘고 뭐가 미우면 뭐도 밉다고 영감(박정희)까지 쏘았다”는 김종필 전 총리의 언급이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이다.
그럼에도 한일 양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2인자에 대한 재조명이 화제가 되는 것은 이유는 뭘까. 절대 권력자에 기생, 현실에 안주하며 견제 역할을 포기하기보다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2인자 정치인의 출현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총리의 장기 집권이 지속되면서 1인 독재가 현실화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 없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주변국 배려는 외면하는 비정상이 뿌리내리고 있지만 이를 견제하는 정치인은 찾아 보기 힘들다.
총선을 70여일 앞둔 우리나라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당의 수많은 2인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취해 자신들의 역할에 소홀했다. 다가올 10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제시하기는커녕, 범죄 혐의가 농후한 여권 인사들 감싸기에 급급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가 전제되지 않은 과거 청산은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2인자로 군림하던 야당 인사들은 더욱 실망스럽다. 나락으로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재기하겠다는 절박함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달고 있는 금배지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일본 사학계에서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가 아닌 영웅 대접을 받는 것은 그의 저서 ‘동양평화론’을 통해 이상적인 아시아의 미래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2인자를 자처한다면 이런 사실 정도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한창만 지식콘텐츠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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