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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방사능 쉬쉬해도 유튜브에 뚫려… 초등 고학년이면 다 안다

입력
2020.01.29 04:40
수정
2020.01.29 09:01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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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일본, 신인류]<4>일본 방사능과 유튜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 최악의 방사선 유출이 우려되는 일본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 일대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이 방사선 물질을 피하기 위해 머리 위에 보호구를 얹고 지나고 있다. 후쿠시마=AP연합뉴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 최악의 방사선 유출이 우려되는 일본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 일대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이 방사선 물질을 피하기 위해 머리 위에 보호구를 얹고 지나고 있다. 후쿠시마=AP연합뉴스

“아베 상, 바보 아냐?”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둘째 딸 유나의, 나직하지만 단호한 혼잣말이었다. 운전하던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유나 앞에 앉았던 나는 몸을 돌려 “갑자기 왜 그래?”라고 물었다. 그러자 유나는 자신이 보던 태블릿 PC를 나에게 건넸다. 산케이신문의 웹 사이트다.

대개 트와이스를 보지만, 학교 사회 수업 때문에 시사 뉴스도 간혹 본다고 한다. 산케이는 가급적 읽지 말라고 예전에 일러뒀었다. 하지만 기사 전체를 무료로 공개하는 신문이 이것 밖에 없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등 다른 신문은 기사 일부만 공개하고, 유료 결제를 해야 전체 기사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야후 재팬’ 포털에 오른 기사들은 모두 공개되지만 대부분 몇 줄짜리 단신이라 수업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유나는 주로 태블릿으로 본 산케이신문을 통해 일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놀라는 한국인 지인들이 있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까지나 웹 뉴스가 그렇다는 것이고, 오프라인에선 아사히신문도 구독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각의 균형은 잡힌다. 아니 그것보다 신문은 수업용으로 읽으니 산케이의 고색창연한 낡은 논리가 유나의 정신을 지배할 틈이 없다.

2018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일본산 식품 수입규제 WTO 패소 대응 촉구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의 가면을 쓴 한 참가자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수산물을 강요하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WTO 패소에 대한 정부 대응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터 앞에서 열린 '일본산 식품 수입규제 WTO 패소 대응 촉구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의 가면을 쓴 한 참가자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수산물을 강요하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WTO 패소에 대한 정부 대응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이들 눈에 아베는 ‘장기집권 독재자’ 

아무튼 유나가 본 산케이신문 기사에는 간략한, 하지만 깜짝 놀랄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 24일 일본 참의원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기간 중 선수촌에서 제공될 음식의 원재료를, ‘동일본대진재’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에서 공급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는 것이다. 유나는 순간적으로 “아베 총리 바보 아니냐?”고 반응했다. 이어 “나이가 먹어서 판단을 못하는 것 같아. 그리고 너무 오래해. 슬슬 그만둬야 할 텐데”라고 대답했다. 유나의 말에 아내와 나는 박장대소했다.

아베 총리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은 나이라고 보기 힘든 만 65세다. 최측근이라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71세,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성 장관이 79세, 니카이 토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80세다. 거기다 많은 사람들이 ‘차세대’라 부르는 고노 다로 방위성 장관은 57세,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은 62세다. 아베 총리의 나이가 많기는커녕, 오히려 적정한 수준으로 보인다. 아니,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일본에서 52세에 한차례, 58세에 다시 총리 자리에 오른 아베 신조는 아주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2007년생인 유나 입장에선 아베 총리는 ‘엄청난 할아버지’에다 ‘독재적 장기집권자’일 수 있다. 한번은 사회 수업시간에 자기가 태어났던 해, 즉 2007년의 일본사회에 대해 조사를 했었는데 그 때 총리가 아베 신조였단다. “2007년 9월 26일 아베 총리가 물러난 나흘 후인 9월 30일 내가 태어났다”는 발표도 했단다. 그리고 2012년 유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총리 직을 수행하고 있다. 유나 입장에선 무진장 오래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법도 하다. 오래한다는 말은 곧 나이 먹었다는 의미니까, 판단력도 흐려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번 더 물었다.

“아베 총리가 무슨 판단을 못했는데? 이번 도쿄올림픽은 ‘부흥’올림픽이라고 했으니까 2011년 대지진을 잘 이겨냈다고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 최악의 방사선 유출이 우려되는 일본 후쿠시마 청사에서 마스크를 쓴 일본 어린이들이 방사능 오염 검사를 받고 있는 어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후쿠시마=AP연합뉴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 최악의 방사선 유출이 우려되는 일본 후쿠시마 청사에서 마스크를 쓴 일본 어린이들이 방사능 오염 검사를 받고 있는 어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후쿠시마=AP연합뉴스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 유튜브서 배운다 

유나가 곧바로 반문했다. “근데 후쿠시마산을 어떻게 먹어?”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물론 나야 일부러 물었지만, 이런 직관적인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 짧은 대답은, 후쿠시마 원전문제가 사고 이후 9년째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아베 정권이 아무리 일본의 기술력과 정신을 강조하고, 아이가 즐겨보는 산케이신문이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아도(이건 아사히신문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되면 다 안다. 오히려 어른들이 여러 이유로 일부러 입에 올리지 않는 후쿠시마 문제의 핵심을 확실하게 지적한다. 잠자코 운전 중이던 아내가 입을 연다.

“그런데 넌 후쿠시마 방사능 문제를 어디서 안거야?”

“아 그거 유튜브 가면 엄청 많이 나와.”

“일부러 찾아서 보는 거야?”

“아니 관련 동영상에 떠.”

무슨 말인가 싶어 유나 태블릿의 유튜브를 열었다. 유튜브로는 트와이스나 보는 줄 알았는데 후쿠시마 얘길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의문은 금세 풀렸다. 유나 태블릿의 유튜브 계정이 내 메일주소로 로그인되어있었다. 내가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동영상 뉴스를 볼 때 관련 동영상에 간혹 트와이스나 블랙핑크가 나오듯, 유나 태블릿에도 내가 봤던 시사 동영상이 뜨는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일본 정부나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후쿠시마 문제를 아이에게 알려준 셈이다.

“그 금연 동영상이 가장 충격적이었어. 아빠 진짜 담배 잘 끊었어.”

아, 그 동영상! 유나가 뭘 말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외국인 유튜버가 방사능 수치 측정기를 들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방사능 수치를 바나나 개수로 표시하는 동영상이다. 마지막 부분에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그리고 우주정거장이 등장한다.

원래 이 동영상은 이 모든 것들보다 더 강력한 방사능은 흡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내가 금연할 때 자극 받으려고 봤던 거였는데, 이게 유나에게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된 문제로 여겨지는 구나 싶었다. 이 동영상 덕에 일본그린피스의 원전 관련 동영상이 다시 뜨는 무한루프 현상이 발생, 찾아보다보니 후쿠시마 문제에 대해 유나 나름의 지식과 소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유나야. 유튜브 너무 믿으면 안돼. 가짜뉴스도 많으니까.”

유튜브 해악을 걱정하는 아내의 한 마디에 놀라운 대답이 돌아온다.

“그것도 알아. 그래서 다 안 믿어.”

한 일본인 유튜버가 지난달 31일 일본 내 방사능 검사 기관들에 후쿠시마산 생수 검사를 의뢰한 후기 영상을 올려 화제다. 4개 기관에 검사를 의뢰했으나 단 한 곳에서도 방사능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유튜브 영상 캡처
한 일본인 유튜버가 지난달 31일 일본 내 방사능 검사 기관들에 후쿠시마산 생수 검사를 의뢰한 후기 영상을 올려 화제다. 4개 기관에 검사를 의뢰했으나 단 한 곳에서도 방사능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유튜브 영상 캡처

 ◇유튜브 맹신하는 어른들 VS 가려 본다는 아이들 

놀랍다. 내 주위만 해도 유튜브 어디에서 봤다며 그게 마치 진리인양 설파하고 다니는 ‘아재’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가 말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발언이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이건 좌, 우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몇몇 ‘킬러’ 컨텐츠가 매일 아침마다 올라 오는데 음모론과 뇌피셜이 난무한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혐오 유튜버들의 제노포비아적 생각이 아무 여과 없이 올라오기도 한다. 차별 극단 고집이 판치는, 나이만 먹은 어른들의 세계에 비하자면 “그거 다 안 믿는다”는 아이의 판단이 훨씬 어른스럽다. 유나는 태블릿을 돌려 받으면서 “올림픽은 그래도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그 바이러스도 그렇고… 빨리 다들 잘 해결됐으면 좋겠어”라고 덧붙였다.

요즘 일본의 메인 뉴스도 온통 코로나바이러스다. 유튜브도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동영상이 급증했다. 아이들도 자연스레 바이러스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유튜브 관련 동영상에 티벳 지역의 고대 바이러스 유출 위험에 관한 뉴스, 혹은 북극 빙하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온 내용들은 뜨지 않은 모양이다. 언젠가 알게 될 사실이지만 아직은 몰라도 된다. 알게 되는 그 때가 되면 우리 세대를 있는 힘껏 욕할 것 같은데, 뭐 어쩌겠나. 이것도 다 인과응보인데.

 박철현 작가 


박철현 작가는 중앙대 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저널리스트를 비롯해 게임플래너, 술집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다 현재는 인테리어 업체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네 명의 아이를 뒀다. 일본 생활 이야기를 담은 ‘일본 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 ‘어른은 어떻게 돼’ ‘이렇게 살아도 돼’ 같은 에세이를 냈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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