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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고향’ 못지않게 정다운 말이 있을까

입력
2020.01.29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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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때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실향민’일 뿐이다. 오랜 세월 살아온 곳에 정다운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하고 고향만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분들을 생각한다면, 고향길에서 쌓인 피로가 행복일 수도 있겠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때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실향민’일 뿐이다. 오랜 세월 살아온 곳에 정다운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하고 고향만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분들을 생각한다면, 고향길에서 쌓인 피로가 행복일 수도 있겠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민족 대이동’이 막 끝났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서 일가친척과 옛 이웃을 만나 시간을 나누는 일은 가치가 있지만, 모두 한날에 겪는 일인지라 ‘이동’ 피로도가 크다.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감정이지만 우리 민족에게 이 감정은 유독 특별하다. 산업화에 따라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지난 반세기의 인구이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에게는 찾아갈 고향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일제강점기부터 본격화된 해외 이주의 역사가 있고, 한국전쟁은 수백만에 이르는 고향 잃은 사람들을 만들었다.

“모든 일에 시작과 마지막이 중요하듯/사람도 마찬가지일 게야/죽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사람이 태어난 곳은 고향이라는데/사람이 묻히는 땅은 뭐라고 하느냐?/거기에도 이름이 있어야 할 거야/고향이란 말에 못지않게 정다운 말이 있어야 할 거야”

고려인 문학가 한대용의 소설 ‘그 고장 이름은?’의 한 구절이다. 그는 북한의 국비유학생으로 소련으로 유학을 갔다가 1958년 그곳에 망명하였다. 이후 카자흐스탄에서 명망 있는 예술인으로 정착하여 살았으나, 고향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고 카자흐스탄에 묻혔다.

오늘날엔 대부분이 일찍이 고향을 떠나 다른 고장에서 살아가고 생을 마감하지만, 한대용의 지적처럼 이상하게도 그 고장에 대한 ‘정다운 말’이 생기진 않는다. 말은 필요에 따라 생겨나는 것인데 고향으로의 회귀 소망 때문에 그 필요를 애써 부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때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여전히 ‘실향민’일 뿐이다. 오랜 세월 살아온 곳에 정다운 이름 하나 붙이지 못하고 고향만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분들을 생각한다면, 고향길에서 쌓인 피로가 행복일 수도 있겠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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