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 이병헌했네.” “연기 잘하는 배우들 다 모였네.”
올해 설 연휴 극장가 승자인 ‘남산의 부장들’은 27일까지 관객 322만6,090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다. 10ㆍ26사태를 리얼하게 되살려낸 데는 이병헌과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등 연기 베테랑들의 앙상블이 핵심이었다는 평가다. 웬만한 영화라면 단독 주연을 할 만한 배우들이 어떻게 다들 ‘남산’에 모였을까.
우민호 감독이 제일 먼저 캐스팅한 이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모델로 한 김규평 역의 이병헌. 두 사람은 ‘내부자들’(2015)을 찍으며 인연을 맺었다. ‘내부자들’ 흥행을 발판으로 차기작을 모색하던 우 감독이 2016년 원작 책의 판권을 사들였고, ‘내부자들’로 신뢰를 쌓은 이병헌이 관심을 보이면서 자연스레 캐스팅이 성사됐다.
이성민, 이희준과 우 감독의 연결 고리는 ‘마약왕’(2018)이었다. 이희준은 ‘마약왕’에서 마약 거물로 성장하는 주인공 이두삼(송강호)과 맞붙는 인물 최진필을 연기했다. 이두삼과 최진필이 멱살을 잡고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때 이희준의 연기가 우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 싸움에서 대배우 송강호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던 것. 이희준이 맡은 곽상천은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에 해당하는 인물. 김 전 중정부장을 맡은 이병헌과 살벌한 권력투쟁을 벌여야 한다. 우 감독은 “송강호에게 밀리지 않았다면, 이병헌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 봤다. 이희준은 25㎏을 찌우고 촬영에 임했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성민은 ‘마약왕’에서 이두삼의 밀수를 눈 감아주는 비리 형사 서상훈으로 짧게 출연했음에도 우 감독의 눈길을 잡았다. 우 감독에게 최고권력자란 무지막지한 철권통치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속내를 숨긴 채 다 믿는 척 해주기도 하면서 뭔가 줄 듯 말 듯한 태도로 2인자들의 피를 말리면서, 그렇게 사람을 부려먹는 섬세한 연기자라고 봤다. 이성민이 제격이었다. 이성민은 특수분장과 컴퓨터그래픽으로 쫑긋한 귀를 만들고, 이도 특수분장 처리를 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한 모습을 갖췄다. 이성민이 이발의자에 누워 있듯이 있다가 이병헌을 향해 일어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병헌이 “정말 그분이 되살아나신 것 같다”며 화들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김형욱 전 중정부장을 모델로 한 박용각 역은 배우 곽도원이 맡았다. 우 감독은 그를 “꼭 한번 같이 해보고 싶었던 배우”로 꼽았다. 김 전 중정부장에 비해 다소 젊어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을 밀어붙였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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