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의 전쟁’에 반대한 부동산정책
막연한 자유시장론에 부양책만 범벅
‘진보 독주’ 욕만 말고 좋은 대안 내야
‘신념의 전쟁’이 될지, ‘권력의 광기’가 될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어쨌든 요즘엔 현 정권을 더욱 짙게 감도는 위태롭고 비정상적인 기류에 최소한의 견제를 바라며 보수 야당 쪽을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현 정권의 ‘진보 독주’를 견제할 ‘개량된 보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개량은커녕 오히려 과거보다 더 반동(反動)으로 퇴행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2012년엔 국내 보수 우파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 정의’에 대한 각성이 처음으로 당 강령에 공식 반영됐다. 직전인 2011년 9월 미국에서는 ‘1대 99 사회’에 저항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벌어졌다. 양극화 문제가 단숨에 글로벌 이슈로 부각됐다. 4월 총선에 12월 대선까지 맞물린 상황이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보수 우파는 부랴부랴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을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이라는 내용을 새 당의 강령에 삽입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당시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수용은 총선과 대선 승리를 겨냥한 제한적 개혁 시늉에 불과했다. 대선 승리 후 박근혜 정권이 ‘경제민주화’의 주창자라며 애써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던 김종인씨를 내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보수 우파가 위기감 속에 ‘경제 정의’ 문제를 직시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자유한국당에는 2012년 당시의 위기감조차 없어 보인다. ‘진보 독주’에 대한 혐오가 건강한 대안을 찾는 쪽으로 가는 대신, 질 낮은 반동으로 치닫는 듯한 조짐마저 보인다. 정부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비판하며 최근 한국당이 총선을 겨냥해 내놓은 ‘시장 중심 자율경제로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한 주택 공약’은 보수 우파의 한심한 퇴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부의 ‘전쟁’은 그 동안의 집값 안정책 역시 ‘시늉’에 그쳤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과수요 억제를 전략적 목표로 확실히 정하고, 구체적 전술로 고가ㆍ다주택에 대한 보유세 강화, 주택 공시가 현실화, 분양가 상한제 강화, 주택 구입ㆍ전세자금 대출선 봉쇄, 갭 투자 억제 등의 전방위 시책이 강행되고 있다. 저금리 지속에 따라 시중 부동자금이 1,000조원을 넘어서고, 불황으로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자금이 부동산 투기로 몰리며 집값 상승을 자극하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불가피한 측면이 큰 정책이다.
물론 ‘부수적 문제들’이 없을 순 없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나 대출 억제는 가격과 가계 자금 조달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논란이다. 주택 공시가 현실화나 보유세 강화를 두고서는 선의의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자 한국당은 이런 불만에 편승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반(反)시장 정책이라며 무조건 정반대로 치닫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놨다. 구체적으로는 재건축ㆍ재개발 및 대출규제 완화,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이 골자다. 실수요자 ‘세금폭탄’ 피해를 내세워 주택 공시가 현실화 정책에도 반대한다.
한국당 부동산 공약의 골자는 자유시장주의에 근거해 인위적 수요억제를 배제하는 대신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대출 규제를 완화해 수요자들이 원하는 주택 구입을 쉽게 하도록 만들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당이 간과한 건 바로 그런 식의 접근이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를 확대재생산해 온 근본적 정책 한계라는 사실이다. 아울러 부동산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활용해온 잘못된 관행을 이제는 정말 바꿀 때가 됐다는 ‘시대정신’의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한국당의 보수 개혁 의지가 진심이라면, 무엇보다 잘못된 부동산 투자 관행을 바로잡는 개혁을 전제로, 현 정부 정책에 따른 부수적 문제들을 최소화하는 보다 세련된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한국당 부동산 공약의 퇴행성은 보수 통합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한국당이라는 한계가 확실히 극복돼야 함을 분명히 재확인 하고 있다.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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