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 가족 친척들과 ‘집값’ 얘기를 하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부동산 공유제’ 도입 약속이 설 연휴 화제의 중심이 되기를 기대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별 호응이 없는 듯하다. 부동산 공유제는 재건축초과이익 환수금, 개발부담금, 기부채납 등을 통해 부동산 개발 이익의 일부를 서울시가 환수해 ‘부동산 공유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으로 토지나 건물을 매입해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발표한 ‘영등포 쪽방촌’ 개발도 공공임대주택 정책 중 하나다. 주민들에게 푼돈만 쥐여주고 쫓아내던 기존 재개발과 달리 공공임대주택을 절반 가량 지어 주민들과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이 저렴한 월세를 내고 살 수 있게 개발하는 계획이다. 그런데 막상 지역 주민들은 “이웃 입주자들이 우리를 외계인 취급할 텐데 함께 살 수 있겠냐”며 떨떠름한 반응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공공주택 거주자를 ‘엘사’라며 따돌리는 세태를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 서울시민 중 53%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의향이 없으며” 81%는 “꼭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국토부 실태조사 결과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내 집을 마련하려고 나서면 경제에는 해가 된다. 이는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특집기사를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새너제이 집값만 안정돼도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4%나 상승할 수 있다”며 “선진국 일부 도시의 주택가격 상승은 경기 침체를 부르고, 집값 버블로 경제 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국민이 자기 집을 소유해야 정치적 안정이 온다는 영미식 고정관념을 버리고, 임대주택 비중이 높은 독일 모델을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 이코노미스트는 집값 안정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적절한 주택금융 규제 마련을 제시했다. 집 소유자와 세입자의 거주비용이 비슷하도록 조정해 집 소유 욕구를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질 좋고 다양한 공공임대주택이 풍부하게 공급돼 집값이 안정되면, 세금과 주택대출 이자를 내는 소유자와 월세를 내는 세입자의 처지는 별 차이가 없게 된다. 여기에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인기 스타나 정치인, 고위 관료가 카메라 앞에서 “엘사가 어때서!”라고 한마디 하면 ‘게임 끝’일 텐데.
정영오 논설위원
*‘엘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영문약자 첫 글자인 L과 그곳에 사는 사람을 합한 신조어로 공공주택 거주자를 낮춰 부를 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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