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지만
할머니부터 사촌동생까지, 모두 스마트폰 삼매경
스마트폰 사용시간 줄이는 ‘디지털 웰빙’ 관심도
SNS에 누리꾼들이 올린 스마트폰 중독 관련 게시글과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한 때 ‘니 서마터폰 중독이다’라는 인터넷 밈(meme)이 유행한 적 있다. 이 밈은 한 누리꾼이 “부산 강아지가 사투리 쓰는 상상하니 기분이 좋다”고 올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에 다른 누리꾼이 “마! 인간아, 산책 나가야지! 니 서마터폰 중독이다!(너 스마트폰 중독이다)”라는 댓글을 달면서 시작됐다.

SNS에 글 올릴 시간에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시켜달라는 강아지의 일침에 많은 누리꾼들이 박장대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스마트폰을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후 이 ‘니 서마터폰 중독이다’ 짤(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웃기는 사진, 짤림 방지 사진을 뜻하는 신조어)은 인터넷 상에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실제로 스마트폰 중독은 국내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지난해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10명 중 3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파악되고 있다. 청소년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 중 4명이 스스로를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생각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설날 다 모였는데… 할머니도, 아빠도, 사촌동생도 스마트폰 삼매경

최근 설날 풍경도 스마트폰으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바뀌었다. 오랜만에 한 데 모인 가족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각자 스마트폰을 하기 일쑤다.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도 유튜브 영상 보기에 여념이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2018년 기준 80.3%, 70세 이상의 스마트폰 보유율도 2013년 3.6%에서 2018년 37.8%로 10배 이상 껑충 뛴 것을 고려할 때, 전혀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다.

회사원 이송현(28)씨는 “오랜만에 가족들을 봐서 반갑기도 하지만 먼 친척들도 많아 어색하기도 하다“며 “말 없이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인스타그램을 확인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씨는 “설날에 모여 윷놀이나 화투 등 함께 놀이를 안 한 지는 5년이 넘었다”며 “할머니는 유튜브, 아버지는 뉴스, 사촌동생들은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먼 길을 오가야 하는 귀성객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스마트폰 덕분에 길게는 7~8시간에 이르는 귀향길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지만, 가족들과의 의사소통이 줄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모(51)씨는 “학업으로 바쁜 아이들과 오랜만에 함께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는데, 뒷자리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려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튜브에서 설날 맞이 전 부치기 방송을 보고 있는 누리꾼들. 유튜브 채널 '순구방구 태기리' 캡처

혼자 설 연휴를 보내는 ‘혼설족’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연휴 내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그동안 못 본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거나, 웹툰을 몰아서 보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유튜브에서 실시간 ‘설날 전 부치기’ 방송을 보며 “영상으로 대신 힐링하고 간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들이 ‘성수기’인 설 연휴를 놓칠 리가 없다. 넷플릭스는 이번 설 연휴에 맞춰 귀성객들을 노린 ‘설 연휴 추천 콘텐츠’을 제공했다. 유튜브에선 레거시 미디어들도 자사 채널에서 인기 프로그램들을 릴레이 스트리밍하고 있다. KBS는 ‘설 특집’이란 이름으로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박2일’을 120시간 연속 방송한다. MBC는 설 당일인 25일 무한도전 등 예전 인기프로그램을 스트리밍하는 ‘옛능TV’ 채널에 3시간 특별방송을 편성했다. 모바일 게임업체들도, 네이버ㆍ카카오 등 웹툰 플랫폼도 너나 할 것 없이 설 맞이 이벤트를 내놓았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기 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구글의 디지털 웰빙 앱인 위 플립(We Flip). 이 앱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다 같이 검은 원을 아래로 내리면 게임이 시작되고(왼쪽 사진), 이후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선 주황색 원을 올려야 잠금 해제를 해야한다(가운데 사진). 한 명이라도 잠금 해제를 할 경우 게임이 멈추고 누가 잠금 해제를 했는지, 얼마나 버텼는지 표시가 된다(오른쪽 사진). 구글 제공
△설 맞이 스마트폰 내려놓기… ’디지털 디톡스’ 어때요

모두가 모이는 설날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자는 여론에, 스마트폰 중독을 줄여 주는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detoxㆍ해독)’ 서비스가 덩달아 주목 받고 있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타이머 기능부터 사용 시간 통계를 제공하는 기능까지 다양한 앱이 이미 출시돼 있다. 특히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최근 디지털 디톡스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 스마트폰 중독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거나 통제하는 방법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김계훈(32)씨는 “이번 연휴 때 ‘위 플립(we flip)’이라는 디지털 웰빙 앱을 사용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위 플립은 친구들과 한 번쯤 해봤던 ‘침묵 게임’과 비슷하다. 모두 각자의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고, 가족들을 초대해 시작 버튼을 누르면 게임이 시작된다. 참여자 중 누군가 먼저 자신의 스마트폰의 잠금을 해제하기 전까지 게임은 지속된다. 만약 참여자 중 한 명이라도 스마트폰을 열면 위 플립은 해제된다. 이후 누가 그새를 못 참고 잠금 해제를 한 ‘범인’인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게임이 이어졌는지 보여준다. 김씨는 “진동이 올 때마다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누가 오래 버티나 승부욕이 발동해 즐거웠다”고 전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구글의 스마트폰 사용 줄이기 실험 중 하나인 구글 인벨로프(envelope). 스마트폰에 해당 앱을 설치한 뒤 파일을 다운 받아 종이 봉투를 만들어 스마트폰을 봉투 안에 넣으면 된다. 이승엽 기자

사용자의 죄책감을 자극해 사용 시간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앱도 있다. 구글이 21일(현지시간) 공개한 엔벨로프(envelope)가 그 중 하나다. 엔벨로프틑 물리적 방식으로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한다. 앱에서 제공하는 파일을 다운받아 종이에 인쇄하고 봉투 모양으로 접은 후, 스마트폰을 그 안에 넣으면 된다. 말 그대로 종이봉투(envelope) 안에 스마트폰을 넣어 사용을 차단한다. 이 상태에서는 전화와 카메라 사용만 가능하다. 시계 모양 버튼을 누르면 숫자 버튼이 차례로 깜빡이며 현재 시각을 알려준다.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려면 봉투를 찢는 수밖에 없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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