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오랜 진통 끝에 통과됐다. 형사사건 절차와 기준을 다룬 형사소송법이 만들어진 지 66년 만에 생긴 가장 큰 변화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해 온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게 있던 권한을 경찰로 대거 이양하는 내용이 골자다.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도 겪게 되는 변화도 상당할 수 있다. 수사를 받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미리 달라진 수사 절차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해 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부분 수사는 경찰이 한다
범죄나 고소ㆍ고발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에겐 수사권 조정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에 휘말릴 수도 있고, 범죄의 피해를 당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겪게 되는 가장 큰 변화는 경찰의 수사 반경이 훨씬 넓어졌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사실상 제한이 없었다. 수사의 주체는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이 고소장을 어디에 제출하는지, 사건의 경중에 따라 갈렸다.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경찰을 건너 뛰고 검찰이 수사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바뀐 검찰청법(제4조)에 따르면 앞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 범위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와 경찰 공무원이 범한 범죄로 제한된다. 폭행이나 마약, 조직, 성폭력 범죄 등은 1차적으로 경찰 수사 대상이다. 일반 시민이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대부분 범죄는 경찰이 수사 주체다.
다만 경제범죄의 피해를 당한 경우엔 수사 주체가 애매하다.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경제 범죄를 어디까지로 볼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대통령령 등 향후 논의를 통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액을 기준으로 수사 범위를 한정할 경우, 일반 시민이 당하는 소액 피해사건은 아예 검찰이 수사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 ‘무혐의’ 수긍 안 되면 제때 이의제기를
또 앞으로 경찰이 수사 끝에 무혐의 결론을 내면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진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없었다. 아무리 경찰이 무혐의로 판단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관련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에 넘겨 최종 검토가 끝나야지만 사건이 종결됐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 법안이 시행되면, 경찰은 ‘혐의없음’ 처분을 내리는 게 가능해진다. 검찰은 이를 최장 90일 동안 검토한 다음 경찰에 재수사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경찰은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는 한’ 이행해야 하는데, 요구가 정당한지 여부는 경찰이 주체적으로 판단한다. 그 동안엔 주도권을 검찰이 쥐고 있었다면, 이제부턴 경찰로 넘어가는 것이다.
범죄 피해를 당한 시민의 입장에선 지금보다 더 경찰의 수사결과를 예의주시 해야 한다. 이전까진 별도의 이의신청이 없어도 사건을 검사가 다시 검토해줬지만, 이제는 피해 당사자 등이 이의신청을 해야 검찰이 사건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기 등 형사 사건의 피해자라면, 경찰의 수사결과를 받아 들일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제때에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찰 단계부터 변호사 선임 필요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연루돼 피의자가 된 경우 경찰 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이 좋다. 범죄의 피해자가 됐을 경우에도 변호사를 만나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유리하다. 대부분 수사에서 경찰의 결론이 최종 결론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피해자든 피의자든 경찰 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가 늘게 되면서 소송비용이 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번에 바뀐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정확한 시행 일자를 포함한 세부 절차는 새 대통령령을 통해 정하도록 돼 있다. 대검찰청과 경찰청, 법무부, 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은 설 명절 이후 대통령령 마련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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