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총리, 인사청문회서부터 협치 내각 강조 
 2005년 노무현 정부 대연정 논란 딛고 이뤄낼까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 전 정세균 국무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협치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사실 그게 잘 이뤄진 적은 별로 없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국회를 찾아 한 ‘팩트 폭행’입니다. 정 총리는 요즘 협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문희상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협치를 하지 않고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쉬운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번 도전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지요.

정 총리의 협치 내각 구상은 총리가 되기 전부터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듯합니다. 그는 7일 인사청문회에서도 “21대 총선이 끝난 뒤 모든 정당이 참여할 수 있는 ‘협치내각’ 구성을 대통령께 적극 건의 드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었거든요. 문재인 대통령도 ‘찬성’ 입장입니다. 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협치야말로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과제”라며 정 총리의 구상에 힘을 실어줬어요.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핵심은 실천 가능성이겠죠.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요. 문 대통령이 협치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임기 초 이종훈 전 새누리당 의원에게 고용노동부 장관직을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직을 제안한 바 있고요. 고 정두언 전 의원에게는 주중대사직을 맡아달라고 타진했다고도 알려졌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론 영입 실패였어요.

희망을 심는 긍정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표적인 ‘탕평 사례’인데요. 진 장관은 ‘원조 친박’으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초대 비서실장과 박근혜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진 장관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을 떠나 더불어민주당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둥지를 옮겼고요. 지난해 3월 행안부 장관으로 임명된 데 이어 11월 후임 총리 후보자로 거론된 적도 있어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2004년 4월 21일 진영 신임 비서실장의 등을 두드리며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들어선 김제남 전 정의당 의원을 신임 기후환경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협치 인사가 아니냐며 주목을 받았죠. 비록 청와대는 “정당을 고려했다기보다 전문성을 높이 사 발탁했다”고 밝혔고, 정의당도 김 전 의원의 청와대행을 두고 “협치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지만요. 완벽한 협치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정도도 ‘협치’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협치 내각 구성을 앞두고 현재 문재인 정부에겐 잊기 힘든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2005년 7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제안했던 ‘대연정’ 말인데요. 박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선거법 개정을 위해 대통령 권력을 내려놓는 건 무책임하고 헌법 파괴적인 생각”이라며 거절했고요. 여권의 후폭풍이 일어 ‘집토끼’마저 잃게 되는 참담한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당ㆍ청 갈등을 지켜보던 문 대통령이 이를 잊을 리가 없다는 거죠.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2005년 9월 7일 청와대에서 회담을 갖고 '대연정' 문제를 포함한 국정현안 전반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협치는 잘만 되면 갈라지는 민심을 통합하는 묘수지만, 그만큼 이뤄내기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 선거 같은 극적인 계기가 없으면 특히 어려울 겁니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도 1997년 15대 대선을 승리로 이끈 필승 전략이었죠. DJ가 대통령, JP가 실세총리 그리고 자민련 몫으로 해양수산부 등 일부 부처 장관 자리를 자민련 몫으로 하는 기계적 협치가 이뤄지나 싶었지만 하지만 당선 후 양측의 밀약 사항이었던 내각제 개헌이 무산되며 진정한 연정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을 일궈낸 김대중, 김종필 당시 양당 총재가 환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어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후보도 단일화를 위해 연정을 시도했다고 하죠. 하지만 투표를 불과 8시간 앞두고 정 후보가 노 후보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면서 짧지만 강렬한 단일화로 남았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정 후보 측이 너무 많은 자리를 양보해 달라 요구했기 때문에 단일화가 깨졌다는 말도 나오고, 노 후보 측이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정 후보 측 지지자들의 발언을 두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노무현(오른쪽)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2002년 11월 20일 심야회동서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뒤 여의도 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으로 러브샷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간은 흘렀습니다. 대연정 논란도 벌써 15년 전 일이고요. 그때 이후로 선거법도 개정됐고, 현재 여야 상황이나 당ㆍ청 관계도 그때와는 다릅니다. 정 총리가 예고한 협치 내각 구성 시기는 4ㆍ15 총선 이후입니다. 유능한 야권 인사가 청와대에서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을지 우려 반 기대 반인데요. 여야를 떠나 국민만 바라보고 일하는 협치 내각이 되길 조심스레 바라봅니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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