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현금복지가 살포된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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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현금복지가 살포된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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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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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복지는 보수의 금과옥조와도 같은 개인의 자유선택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복지지출의 방식인 반면 현물복지는 개인이 자유선택권을 국가가 선택한 범위 내로 제약하는 정책일 수도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시민들이 출근하는 모습. 이한호 기자

현금복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부 보수언론은 현금 살포, 퍼주기, 세금 낭비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해 현금복지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어떤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현금을 “원 없이 뿌린다”는 표현을 써가며 현금복지를 비난하고 있다. 이런 기사들을 읽다 보면 동네 강아지도 입에 현금을 물고 다닐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한국이 현금복지의 천국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비난의 실증적 근거는 없다. 거짓말이다.

OECD 자료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복지지출 중 현금지출 규모는 4.2%(2017년)로 멕시코를 제외하면 꼴찌다. 한국은 복지지출 자체가 낮은 것은 물론, 현금복지도 가장 인색한 국가다. OECD 회원국의 복지지출 대비 현금지출의 비중은 평균 58.6%(2015년)인 데 반해 한국은 이보다 낮은 40.0%(2017년)다.

반면 보수언론의 비난과 달리 전체 복지지출 대비 현물복지(서비스) 비중은 가장 높다. 심지어 현물을 중심으로 복지지출을 확대했기 때문에 복지국가의 모범이 될 수 있었다고 알려진 스웨덴도 복지지출에서 현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57.5%로 한국의 60.0%보다 낮다. 인터넷을 잠깐만 찾아보면 이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마치 현금이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현금복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직면한 실업, 노령, 질병, 돌봄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과 생활수준의 저하를 막는 복지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 중 하나이다. 우리가 직장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라.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나이 들거나 병들어 더 이상 돈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할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금이다. 복지국가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현금복지를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험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로,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과 같은 사회수당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현금복지를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것이고, 기사를 쓴다면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것이다.

더욱이 복지 확대의 불가피성에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현금복지의 확대를 비난하는 보수언론을 보면 정체성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차라리 직설적으로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것이 정직한 주장이다. 반(反)복지는 1980년대 이후 보수가 지향했던, 지금은 그 정당성을 잃어 가고 있는 작은 정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보수가 복지 확대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현금복지의 확대를 비난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언행이 아니다. 현금복지는 보수의 금과옥조와도 같은 개인의 자유선택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복지지출의 방식인 반면 현물복지는 개인이 자유선택권을 국가가 선택한 범위 내로 제약하는 정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확대를 비난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앙과 지방의 역할분담이 모호하고, 중앙정부의 소득보장정책이 부실한 한국 사회에서 노인, 청년, 여성, 저소득층 등 취약한 인구사회집단이 직면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확대는 당분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더욱이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기초자치단체의 잉여금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초자치단체의 복지 확대에 대한 적극적 고민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전시성ㆍ사업성 예산과 잉여금을 경쟁적으로 줄여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현금복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현금과 현물의 균형적인 복지 확대를 통해 지속 가능한 경제의 길을 찾아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현금복지가 살포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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