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사회, 신음하는 지구촌] 1부 <7>서커스만 있고 빵은 없는 브라질
서울의 세종대로와 비슷한 브라질 상파울루의 중심지 파울리스타 대로. 2㎞ 남짓한 이 대로는 매주 일요일이면 차량 진입을 막고 시민들이 오갈 수 있도록 개방한다. 지난해 12월 1일 오전 기자는 차량 한 대 없는 왕복 8차선 도로 한 가운데를 걸었다. 길 양쪽으로는 길거리 공연을 준비하는 음악가들과 캐리커처(희화)를 그리려는 화가들, 음료수와 간식 등을 길에 늘어놓고 있는 상인들이 각자의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소한 구경거리를 만끽하던 중 뒤에서 “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도주하는 도둑을 가리키고 있었고, 몇몇 사람은 그 자전거를 뒤쫓았다. 마주 오던 경찰 두 명도 자전거가 사라진 좁은 차도로 뛰어갔다. 여성은 지갑겸용인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다가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었다. 앞서 “길에선 절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다니지 말라”는 현지 교민의 말이 떠올랐다.
비슷한 시각,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파라이소폴리스 빈민촌(파벨라ㆍfavela)에서는 범죄자를 쫓던 경찰과 이 지역 주민들이 대치하다 시민 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명은 부상을 입은 채 이송된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추후 현지 통역은 “구급차로 옮겨진 게 아니라 경찰이 차에 태워 이송한 것이라면 아마 그가 다시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부의 불균형, 범죄 산업화의 원인
지난해 1월 출범한 보수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는 치안강화를 주요 정책으로 꼽았지만, 브라질에서 살인 강도 등 중범죄는 여전히 일상이다. 개인도 총기 소유가 가능한 나라여서 총격 사건은 다반사다. 그래서 현지 한국 기업 법인 관계자의 차량은 대부분 방탄 장비를 장착했다. 방탄 장비 탑재 가격만도 5만헤알(한화 약 1,500만원)로 경차 한대 값이다.
브라질에서 범죄는 또 하나의 산업이다. 강도, 강탈, 소매치기 등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극심한 부의 불균형이 범죄의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브라질 국립통계원(IBGE)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상위 1%의 월평균 소득은(2만7,744헤알) 하위 50%의 소득(820헤알)의 33.8배에 달한다. 실업자수는 1,300만명을 웃돈다. 대학생 루카스 모리아스(23)는 “교육을 못 받는 사람도 여전히 많고 일자리도 부족해 가난한 사람들이 범죄로라도 먹고 살겠다는 것”이라며 “가진 사람들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인식도 강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빅토르 코엘로(22)는 “최근 장만한 휴대전화를 권총 강도에게 빼앗겨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그런 전화를 들고 다닐 정도면 너는 또 사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정도”라고 말을 보탰다.
무법지대 파벨라, 군경이 최대 갱단
2016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이자 예수상의 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리우)는 무법지대인 파벨라가 밀집된 곳이다. 브라질 전체 파벨라 거주 인구 1,200만명 가운데 150만명이 리우에 몰려 있다. 파벨라 수만도 1,000개 안팎이다. 지난달 6일 찾은 이곳에서 통역은 “예수상 정면으로는 잘 사는 곳, 뒷면으로는 가난한 곳”이라며 “무법지대인 파벨라를 장악한 최대 갱단은 밀리치아오”라고 전했다. 군대(밀리터리)와 경찰(폴리치아)의 합성어인 밀리치아오는 말 그대로 전ㆍ현 군경이 모인 갱단이다. 소방대원도 포함된다. 공권력이면서도 범죄집단인 셈이다. 이들은 파벨라 등에서 약탈과 보호비 수금 등의 악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가스 공급, 케이블TV, 부동산 임대업 등도 영위한다. 불법 도박, 마약ㆍ무기 거래도 일삼는다. 브라질 국민들의 군경에 대한 적대감이 높은 이유다. 이들이 연간 거두는 수익도 수천억원에 달하는데, 막강한 자금력으로 정치인도 쥐락펴락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우의 한 시민은 “군인 출신이자 리우에서 시의원을 역임한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이들과 밀접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개인대출 이자 연 100%...금융도 약탈
브라질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신뢰는 바닥 수준이다. 노동자 출신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도 비리 혐의를 받는 등 정치는 곧 ‘부정축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와 함께 국민들이 적대하는 분야가 금융이다. 브라질 기업 순위 최상위권에는 항상 이타우, 방코 드 브라질 등 은행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만큼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수익원은 ‘약탈적 금리 장사’다. 개인대출 금리가 연 100% 수준이다. 카드 신용대출 이자는 200%까지 치솟는다. 앉아서 이자 놀이로 돈을 번다. 정부가 개인대출 연체이자 90%를 삭감하라고 해도 손해 볼 게 없다. 또 달러계좌를 가질 수 없도록 해 기업들은 해외 달러 수입을 무조건 헤알로 바꿔야 하며, 달러가 필요할 경우 다시 은행에서 환전해야 한다. 환전 수수료 수익도 쉽게 올릴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박노석 브라질 한국상공인연합(코참브라질) 회장은 “이곳 현지 은행들은 외국인 계좌에서 맘대로 돈을 빼내 돈을 굴리기도 한다”며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 피해를 입은 교민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상파울루ㆍ리우 데 자네이루=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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