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라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하는 이들도 많다. 취업 준비 때문에 설 연휴가 더 바쁜 청춘들,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복직’을 기대하며 설에도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 해고노동자들이 그렇다. 비록 가족과 차례음식을 나눠먹으며 이야기꽃을 나눌 순 없어도 이들에게도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설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올해 더 나아질 거란 기대를 품고 다시 신발끈을 바짝 조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칼바람 부는 철탑 위에서 설 맞는 해고노동자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는 서울 강남구 강남역사거리에 있는 높이 25m짜리 교통 폐쇄회로(CC)TV 철탑 위에서 231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6월 철탑에 오를 때만 해도 이렇게 장기전이 될 줄은 몰랐다. 김씨는 지난 추석에 이어 올 설에도 칼바람 부는 철탑 위에서 명절을 맞게 됐다.
김씨는 1982년 말 삼성항공에 기술직으로 입사해 1990년부터 노동조합 설립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1995년 해고됐다. 그 후로 10여년 동안 삼성그룹에 사과와 명예복직, 해고 기간 임금 산정 등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지난해엔 드디어 결실을 볼 거란 기대감이 컸다. 사측의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와해 사건으로 전ㆍ현직 임원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삼성이 이에 대해 사과문까지 내놓으면서 해고노동자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가 뒤따를 걸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철탑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김씨가 다니던 회사가 이미 다른 회사로 매각돼 삼성이 복직할 의무가 없다고 하면서다. 김씨의 설 소원은 삼성의 사과와 명예 복직이다. 김씨는 “이번 설에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한 게 안타까웠는지 아내가 떡국을 끓여 오기로 했다”며 “하루빨리 사과도 받고 명예 복직도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쟁을 돕느라 설 연휴에도 편히 쉬지 못하는 동료들과 가족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 설이 더 바쁜 청춘들
서울 관악구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문모(29)씨는 올해 설에도 부모님을 뵙지 못 한다. 의지를 다잡으려고 지난 6일엔 아예 월 35만원짜리 ‘관리형 독서실’을 끊었다. 평소처럼 ‘의무 출석’은 아니지만 문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휴대폰까지 제출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문씨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라며 “오는 6월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는 만큼 설에도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문씨처럼 청춘들은 설이 더 바쁘다. 각종 시험 준비 등으로 취업준비생 2명 중 1명은 올 설 연휴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서울에서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5)씨는 “하루라도 집에 내려갈까 고민을 했지만 시험이 바로 코앞이라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다”며 “올해는 반드시 합격해서 추석 땐 당당하게 고향집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5년째 회계사 시험을 공부하는 오모(29)씨는 “시험이 한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며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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