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슘-137 농도 평균의 60배... 원안위, 수치 보고받고도 보름 지나 공개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지난달 방사성물질이 누출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달 초 방사성물질 농도 이상 수치를 보고받았으나, 보름 넘게 지나서야 언론에 알렸다. 원자력 공공연구기관과 규제기관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 문제를 대일본 외교의 ‘아킬레스건’으로 삼고 있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사고 사실 공개를 늦춘 것 아니냐는 시각마저 나오고 있다.
원안위는 원자력연 일부 시설에서 인공 방사성물질(세슘-137, 세슘-134, 코발트-60 등)이 주변 우수관을 통해 원자력연 안팎으로 방출된 사고를 조사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원안위와 원자력연은 누출이 일시적이고 양이 많지 않아 “연구원 직원들이나 인근 주민들에 미치는 위해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방사성물질 누출 가능성이 처음 확인된 건 이달 6일이었다. 주기적으로 해온 환경조사를 위해 지난 12월 30일 원자력연이 부지 내 정문 앞 배수구 속에서 채취한 흙을 분석했더니 세슘-137의 농도가 흙 1㎏당 25.5베크렐(Bq)로 나온 것이다. 최근 3년간 평균(0.432Bq)의 60배에 가까운 수치다. 원자력연 관계자는 “결과를 얻은 당일 원안위 지역사무소에 구두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후 원자력연은 이달 20일까지 부지 내·외부에서 126개 환경시료(흙, 물)를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원자력연 내부 하천(덕진천) 바닥의 흙(하천토양)에서 세슘-137이 최고 138Bq/㎏으로 나타났다. 정문에서 대전 시내 쪽으로 흐르는 덕진천과 관평천의 하천토양에선 3.1~12.4Bq/㎏였다. 2018년 한 해 동안 원자력연 주변 방사성물질은 0.555~17.9Bq/㎏이다. 원자력연 외부 세슘-137 농도는 이 범주에 들어가지만, 내부 농도는 최대 8배 가까이 치솟았던 것이다. 다만 하천의 물에선 검출되지 않았다. “흙과 더 잘 흡착하는 세슘의 특성 때문일 것”이라고 원안위 관계자는 예상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따르면 전국 지역별 토양의 세슘-137 농도는 0.611~37.4Bq/㎏이다.
원자력연 내 덕진천은 자연증발시설 앞에서 시작되는 우수관과 연결돼 있다. 자연증발시설 앞 맨홀 내부에선 시간당 최대 3.4마이크로시버트(µ㏜)의 방사선량이 측정됐다. 이에 원자력연은 자연증발시설이 방사성물질 누출의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지난 21일 원안위에 보고했다. 이 시설은 극저준위 액체 방사성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태양열로 물을 증발시키는 곳이다. 여기서 누출된 방사성물질이 우수관을 타고 하천으로 흘러 들어갔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원안위는 21일 사건조사팀을 현장에 파견했고, 다음날인 22일 조사 중인 사실을 공개했다. 지역사무소가 이상 수치를 처음 보고받은 뒤 16일이 지난 시점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원자력연이) 정상적인 보고 절차는 밟았다”며 “더 빨리 알려도 좋았겠지만, 피해가 커질 상황은 아니었고 원인이 토양 유입인지 원자력 시설 영향인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원자력연 관계자 역시 “공개가 늦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이상 수치가 누설의 영향인지 자연 현상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과거 일부 원자력연 연구원들이 방사성폐기물을 무단으로 반출·폐기한 사실을 은폐해 실형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는 만큼 규제기관의 잣대가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원자력 분야 한 대학교수는 “인근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니 즉시 사실대로 공개하고 주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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