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생 김선호(가명ㆍ29)씨는 이번 설엔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지난해 설 때처럼 ‘언제 취직할거냐’ ‘누구는 벌써 취업해서 결혼한다더라’와 같은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가 쏟아질 거라 생각하니 차라리 자취방에 혼자 있는 게 마음만큼은 더 편하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김씨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의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아예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 3,39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이번 설 명절 가족 및 친인척들로부터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복수응답)로 ‘앞으로 계획이 뭐니?’(29.1%)가 꼽혔다. 취업은 ‘언제쯤 할거니?’(26.6%), ‘나 때는 말이다’(25.8%),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23.8%), ‘어서 결혼·출산 해야지’(21.9%), ‘애인은 있니?’(18.1%) 등이 뒤를 이었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명절 잔소리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연봉’이 이야기 화제로 올라오면, 지인 자녀 등과 연봉을 비교하거나 직장 잡았으니 이제 결혼 계획 세워야지 식으로 화제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소연(33)씨는 “결혼하라는 잔소리 때문에 매번 명절 때마다 엄마와 싸운다”며 “너네 회사에선 얼마씩 주냐 이런 말 듣는 것도 스트레스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추석 명절이 스트레스인 이유는 무엇인가'는 질문에 응답자의 30.1%가 '부모와 친인척 어른의 잔소리'를 꼽았다. 가장 듣기 싫은 부모와 친인척의 명절 잔소리로는 ‘결혼은 평생 안 하고 살 거야?’가 22.5%, ‘넌 뭐 하고 살래?’가 22.2%로 1, 2위였다.
아예 설 연휴에 고향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알바콜이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성인남녀 1,523명 대상) 결과, 응답자의 49.4%가 귀향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우리 집으로 모이거나(26%)’, ‘고향에서 거주 중(11.5%)’인 경우를 제외하고, ‘가족 잔소리, 스트레스가 예상돼서(11.0%)’, ‘올 구정 연휴가 짧아서(9.9%)’, ‘여행 등 다른 계획을 세워서(7.7%)’, ‘지출 부담(6.6%)’ 등이 주 이유로 꼽혔다.
취업준비생만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건 아니다. 명절 때 지난 뒤엔 늘상 이혼 신청이 는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지난해 설까지 총 7차례 명절이 포함된 달과 그 다음 달의 전국 법원 협의이혼 신청 건수를 비교한 결과 명절 직후 예외 없이 늘어났다. 작년 설의 경우 2월 협의이혼 신청 건수가 9,945건이었는데, 3월엔 1만753건으로 8.1%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평소 소통이 부족한 가족, 친척들이 명절 때만 만나 각자의 관점에서 얘기를 꺼내다 보니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한다. 스스로 아끼는 마음에 꺼낸 말이라도 상대에겐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나 취직처럼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법한 말은 처음부터 꺼내지 않는 게 낫다는 얘기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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