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 베이조스 휴대폰 해킹 논란
트럼프-툰베리, 다보스 포럼서 기후변화 문제 설전

‘사생활 보호와 환경 문제’. 현대인들의 대표적 관심사다. 흥미가 많으면 충돌도 잦은 법이다. 유명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21일(현지시간) 하루 두 이슈를 놓고 세계의 ‘셀럽(인지도가 높은 유명인사)’들이 맞붙었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하나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불륜 소식이 알려졌는데, 휴대폰을 해킹한 당사자는 다름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였다.

같은 날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스웨덴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다시 한 번 가시돋친 말을 주고 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56세의 나이 차를 뛰어 넘는 ‘조손 대결’이 재연된 것이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지난 2017년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정보화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 언론은 이날 무함마드 왕세자가 베이조스에게 보낸 휴대폰 메시지에 악성파일이 첨부돼 다량의 정보가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FTI컨설팅은 무함마드의 ‘왓츠앱’ 계정이 베이조스의 스마트폰 해킹에 연루됐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디언도 소식통을 인용, “2018년 5월1일 무함마드의 왓츠앱 메시지에 첨부된 비디오파일이 악성 소스였다”고 전했다. 디지털 포렌식 조사에서도 해당 파일이 베이조스의 휴대폰에 다운로드 된 후 수시간 만에 데이터가 대량으로 유출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기까지는 실수로 볼 여지도 있지만 무함마드가 베이조스 휴대폰에 접근한 시점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교롭게도 해킹 사건 5개월 후 사우디 왕가를 비판하는 칼럼을 쓰던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에서 사우디 정보요원들에게 살해됐다. 카슈끄지는 주로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비판 칼럼을 게재했고, 베이조스는 WP의 사주다. 이런 연결고리를 감안했을 때 휴대폰 해킹 건은 별개 사건이 아니라 베이조스를 흠집 내 카슈끄지의 펜대를 꺾으려 한, 무함마드의 계산된 시나리오라는 추론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근무한 중동 전문가 앤드루 밀러는 “무함마드는 (베이조스의) 약점을 확보해 사우디에 대한 WP의 논조를 바꾸고 싶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우디 연루설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앞서 베이조스의 보안 담당자도 지난해 3월 미 타블로이드 주간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베이조스의 불륜 정황이 담긴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을 보도하자 “전화기를 해킹한 범인은 사우디”라고 단언했다. 물론 사우디 측은 펄쩍 뛰고 있다.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은 “컨설팅 보고서는 터무니 없는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FT는 “사우디 최고 실권자가 미국 유명 기업인의 해킹 배후라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양국관계에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운데)가 21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 행사장에서 도널드 트럼프(뒷줄 빨간 넥타이) 미국 대통령을 뒤로한 채 퇴장하고 있다. 다보스=AP 연합뉴스

이날 트럼프와 툰베리는 다보스에서 4개월 만에 조우했다. 물론 결과는 지난해처럼 좋지 않았다.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두 사람은 ‘기후변화 대응’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앞뒤로 연단에 올랐다. 포문은 트럼프가 먼저 열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지금은 비관할 때가 아니다”라며 기후 위기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들은 한 물 가고, 멍청한 점쟁이의 후예들”이라며 “종말론과 대재앙에 대한 그들의 예언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기후변화 운동가들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됐고, 툰베리도 현장에서 연설을 듣고 있었다.

이후 연설은 자신의 경제 치적을 잔뜩 자랑하는 말로 채워졌다. 그는 “미국은 경제 활황의 한 가운데에 있고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도 1등”이라면서 “급박한 문제를 마주하면 과학자들이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만 쏟아냈다. 트럼프가 내놓은 친환경 연설은 WEF가 추진하는 ‘1조 그루 나무 심기’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말이 전부였다.

한 시간 뒤 ‘기후 대재앙 방지’ 세션 연사로 등장한 툰베리는 초반부터 “권력자들의 무책임과 무대응이 불타는 지구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며 트럼프의 반환경적 행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트럼프를 포함한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어린이들에게 ‘걱정 말라’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또 “나무를 심기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조치와 맞바꿀 순 없다”면서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기후변화 회의론자인 트럼프(73)와 기후시위 아이콘 툰베리(17)는 할아버지와 손녀 나이 차가 무색하게 사사건건 부딪쳤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선 지나가는 트럼프를 툰베리가 쏘아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둘의 설전은 트위터에서도 이어져 트럼프가 ‘분노 조절 문제에나 애쓰길 바란다’ 등으로 비아냥대자 툰베리는 이를 계정 자기소개에 고스란히 반영해 응수했다. NYT는 “트럼프와 툰베리가 다보스포럼 첫날을 지배했다. 둘은 줄곧 양 극단의 견해를 표출하며 정반대의 미래를 그렸다”고 전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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