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124)] 호주 캠핑카 여행 2편
※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여 간 호주 대륙을 횡단했다. 12월 중순 시드니를 떠날 때 최악이라던 산불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정에서 스쳐간 인연들, 길에서 만난 수많은 야생동물은 무사할까? 하루 빨리 화마의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
아무데나 서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호주는 넓다’. 최소 한 달 이상을 잡아야 하는 대륙 횡단 캠핑카 여행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캠핑카 대여는 빠를수록 유리하다
캠핑카 대여 가격이 가장 궁금할 것이다. 김빠지게도 대중이 없다. 호주는 넓고 캠핑카 회사는 많다. 호텔처럼 생각하면 된다. 대여 기간과 시기, 차종, 수용 인원 그 외 다양한 옵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기간이 길면 할인도 된다. 우린 두 달 반을 빌릴 예정이면서도 사정상 2주일 전부터 급히 알아봤다. 퍼스에서 캠핑카를 인수해 시드니에서 반납하는 조건이었다. 역시 늦었다. 중고차를 사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선택의 폭이 좁았다. 구글의 힘을 빌려 무한 검색, 결국 ‘모터홈리퍼블릭(motorhomerepublic.com)’에서 최종 선택했다. 캠핑카 업계에서 대부 같은 회사다. 가격 비교가 쉽고, 렌터카 업체보다 저렴하면서도 탄탄한 보험에 별도로 가입할 수 있다. 업체는 자기 입맛에 맞는 캠핑카를 찾으려면 최소 두 달 전에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참고로 우리의 캠핑밴은 보험료를 빼고 하루 약 64호주달러(약 5만1,000원)였다. 이 정도면 매우 저렴한 편인데 그만큼 골치도 썩였다.
◇캠핑카 인수…확실하게 파악하고 꼼꼼하게 체크하자
캠핑카를 대여할 때 인수 서류에 사인했다. 으레 하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다. 직원은 차량에 갖춰진 물품, 냉장고에 연결된 배터리 사용법 등 눈이 있으면 누구나 알 법한 내용을 설명했다. 캠핑 여행이 시작되고 북쪽으로 가니 날이 덥고 습해졌다. 외진 국립공원 내에서 하룻밤 묵어가려던 어느 날 밤이었다. 모기의 습격을 피하고자 창문을 닫으니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때 손바닥만한 실내 선풍기가 대활약! 뭐든 쓸모 있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날 출발하려니 시동이 안 걸린다. 배터리가 살아날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보험사를 불러야 하나? ‘노서비스’ 지역인데 구조 연기라도 피워야 하나? 여긴 불 피우는 게 금지인데!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리고 있을 때 우리 차보다 안쓰러운 차가 도리어 우릴 구조했다. 그 운전자에겐 배터리 점프 케이블이 있었다. 서로의 차 배터리에 양극과 음극을 연결하자 부르릉~ 드디어 시동이 걸렸다. 우리를 살린 차 주인은 시동을 끄지 말고 최소 100km는 달리라 했다.
캠핑카를 이용할 땐 배터리 구조를 파악하고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캠핑 차량의 배터리는 두 가지. 냉장고(풀 옵션의 경우 전자레인지도 있다. 여기선 ‘냉장고’로 통칭한다) 플러그가 연결된 보조 배터리와 차체 본래의 주행용 배터리가 있다. 차가 달릴 때 이 두 가지 배터리가 모두 충전된다. 캐러밴 파크를 이용할 때 전기 사용이 가능한 곳(파워드 사이트ㆍpowered site)을 택할지, 불가능한 곳(unpowered site)을 원하는지 묻는다. 즉, 차량이 아니라 외부 전기를 사용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거다. 파워드 사이트를 선택하면 차량에 공급되는 단독 전원이 주어진다. 캠핑카 내의 케이블을 이용해 연결하면 된다. 이때 냉장고 플러그는 보조 배터리에서 뽑아 차 안에 설치된 콘센트에 꽂는다. 이 콘센트는 일반 가정용과 같다고 보면 된다. 카메라나 노트북 배터리도 같은 속도로 충전할 수 있다.
언파워드 사이트를 이용할 경우 운전석에 있는 (배터리 전환) 버튼을 눌러 주행용 배터리의 사용을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행용 배터리가 밤새 작동해 냉장고에 전원을 공급하고 결국 방전돼 버린다. 차량을 인수할 때 직원이 이 중요한 설명을 쏙 빼먹었다. 그날 냉장고에다 선풍기까지 사용했으니 시동이 안 걸리는 게 당연했다. 그후에도 오지에서 몇 번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차가 무서워졌다. 웬만하면 파워드 사이트를 택했고, 어쩔 수 없이 언파워드 사이트를 이용할 땐 냉장고도, 선풍기도, 충전용 전자제품도 다 끄고 빼버렸다. 멍청하게도 캠핑밴을 반납할 때에서야 이 버튼의 진실을 알았다.
비운의 스토리를 이토록 길게 쓰는 이유는 캠핑카를 인수할 때 작동법을 충분히 숙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의심하라! 기본 물품은 물론 응급 사태에 대비한 휴대용 소화기, 스페어 타이어 및 스패너 등도 제자리에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한다. 어물어물 대충, 속 없이 덜컥 서류에 사인부터 하지 말라는 충고다. 우린 이 모든 경우의 희생자였다. 부디 오지에서 스패너가 없어 타이어를 교체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겪지 않길 빈다.
◇최소 두 명의 운전자가 필요하다
“오늘은 내가 200km 달릴게.”
장롱면허 신세를 벗어난 계기가 이번 캠핑카 여행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동 거리가 멀기에 홀로 운전한다는 건 중노동이다. 흥미로운 풍경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낫다. 어제 본 것 같은 풍경이 반복되고, 명상의 세계에 빠져들 사막이 끝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운전의 피로는 쌓이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 호주에선 2시간 주행 후 휴식을 강권한다. 이를 위해 잠시 쉬어갈 휴게소도 넉넉히 마련 중이다. 우린 150~200km마다 운전대를 바꿔 잡았다. 조수석 탑승자가 과일도 깎아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살아있는 내비게이션이 될 책임도 약속했다. 이동 자체가 여행이다.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주유 요령…거리 계산하지 말고 웬만하면 넉넉하게
호주 남서부의 멘지스(Menzies)에 갔을 때다. 주유소가 있었다. 앱으로도 파악해 두었다. 유령 도시로 알려진, 즉 아무도 잘 안 가는 쿠키니(Kookynie)에 다녀온 뒤 연료를 채우기로 했다. 기름을 넣으려고 폼을 잡는데, 경유 밖에 없다. 우리 차는 휘발유가 필요한데. 깡촌 주유소는 의심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133km 떨어진 칼구리(Kalgoorie)까지 거의 기어가다시피 했다. 허허벌판에 차가 서는 악몽을 경험했다. 변방으로 간다 싶으면 미리 채우자. 예상보다 유류 소비가 심한 구간을 만날 수도 있다. 정확한 계산은 애초 버리는 게 옳다. 웬만하면 ‘넉넉하게’, 한가위 인심으로 연료를 대한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밤 운전은 피하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야간 운전을 금물이다. 야생동물의 출연 때문이다. 일부 렌터카 업체에선 밤에는 운전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일반 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경험자만 알 것이다. 시속 100~120km로 달리는 차가 그들을 만날 때의 공포. 캥거루ㆍ왈라비ㆍ웜뱃ㆍ소 등 주인공도 다채롭다. 자연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차도 내 몸도 아작 날 수 있다. 도로 한가운데의 사체 역시 과속방지턱이나 다름없다. 호주 캠핑카 여행은 아침형 인간에게 적합하다. 해가 뜨면 달리고 지면 멈춰야 한다. 언제나 서둘러 문을 닫는 호주에 최적화된 여행법이기도 하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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