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얼굴’은 따로 있다.”
극 장르 종사자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이석훈(36)이 딱 그렇다. 단순히 잘 생겼다는 얘기가 아니다. 보컬 그룹 SG워너비 출신이니 노래야 당연히 잘하고, 그 외 연기에다 안무에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까지, 놀랍다는 반응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뮤지컬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렌 역을 맡은 이석훈을 마주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웃는 남자’는 17세기 영국에 살던, 기이하게 찢어진 입을 가진 그윈플렌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다. 광대로 살다 이상한 미소 덕에 인기를 얻은 그윈플렌은 어느 날 낯선 자들에게 붙잡혀 고문소로 끌려가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가 실제론 귀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널리 알려졌듯, 이 작품은 영화 ‘조커’의 모티프가 됐다.
이 그윈플렌 역을 이석훈은 슈퍼주니어 규현, 엑소 수호, 배우 박강현과 번갈아 가며 연기한다.
이석훈은 1막과 2막에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진폭 넓은 연기를 펼친다. 순수하고 꿈 많던 그윈플렌이 왜 광기 어리게 변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귀족 사회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며 ‘그 눈을 떠’와 ‘웃는 남자’를 부를 때는 극장 전체가 서늘해질 정도다.
어린 시절 인신매매단에 의해 입이 찢긴 채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린 그윈플렌은 존재 자체로 이 세상의 부조리를 대변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대사도 등장한다. 양극화된 요즘 시대와도 맞닿는 주제의식이다. “우리는 현실에 항복하는 법을 배우지만, 그윈플렌은 맞서 깨부수잖아요. 그런 부분 때문에 관객들이 감정이입 하는 것 같아요.”
이석훈은 동료들 사이에서 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노래와 연기를 기술적으로 잘하는 건 누구나 가능해요. 하지만 주연 배우라면 극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제게 그윈플렌 역이 맡겨진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연습실에서 기절한 적도 있단다. 이석훈은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프로는 성장하는 모습이 아니라 완벽한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족할 수준까지 해야 마음이 놓여요.”
이런 완벽증은 사실 무대가 두려워서다. 뜻밖이었다. 숱한 무대를 겪은 11년차 가수이자 ‘복면가왕’(MBC) 최다승 가왕이었다. 뮤지컬만 해도 이미 ‘킹키 부츠’와 ‘광화문 연가’를 겪었다.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
이석훈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가수에게 매력과 개성이 중요하다면 뮤지컬 배우에겐 무엇보다 발성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동안 소리의 중요성을 모른 채 노래를 해 왔다는 생각에 요즘 발성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믿고 보는 배우, 실력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 “‘가수 이석훈’은 자연스러운데, ‘뮤지컬 배우 이석훈’이라고 저를 소개하는 건 아직은 조금 주저해요. 자신 있게 뮤지컬 배우라 말하고 싶어요.” 숨겨온 작은 소망도 하나 있다. “SG워너비에 중간 합류했던 터라 가수로서 저에겐 신인 시절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뮤지컬로는 신인상을 꼭 받아보고 싶어요.”
자신 있을까. “커튼콜 전에 늘 스스로 묻습니다. 공연이 만족스러웠는지. 살며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제가 가진 모든 걸 남김없이 쏟아 부었거든요. 이번 작품, 자신 있습니다.”
‘웃는 남자’는 3월 1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른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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