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ㆍ정당 명절 선물은
선물 통해 정치철학ㆍ취향 짐작

‘전북 전주의 이강주((梨薑酒), 강원 양양의 한과, 경남 김해의 떡국 떡.’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이한 청와대의 선물 목록입니다. 설, 추석 등 큰 명절 때마다 공개되는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주요인사뿐 아니라 소외계층에까지 두루 전해지는데다 제왕적 대통령 시대의 ‘하사품’이라는 인식도 남아 늘 관심의 대상이죠. 또 대통령의 정치철학에 더해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을 엿볼 수 있고요.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명절 선물을 보냈을까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봉황을 금박으로 새긴 상자에 인삼을 담아 보내곤 했다는데요.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은 격려의 의미를 담은 ‘돈봉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대통령 측근과 정ㆍ관계 유력인사 등 일부에게만 전해졌다고 해요. 문민정부에 들어선 이후에야 지금 같은 청와대의 명절 선물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멸치 정치’라고 불릴 정도로 멸치를 자주 선물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줄곧 아버지 김홍조옹 표 경남 거제산 멸치를 명절 선물로 선택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고향 전남 신안의 김, 한과 등 지역 특산물을 보냈다고 합니다.
고질적인 지역감정 극복을 중요한 통치 목표로 내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 안배 형 선물을 선보였는데요. 취임 첫 해인 2003년 추석에 호남의 복분자주와 영남의 한과를 함께 보냈죠. 이 같은 지역 안배 형 선물 구성은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문 대통령까지 이어지며 명절 선물의 대세로 자리잡았습니다.
정치권 명절 선물 문화에 또 한번의 격변기는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며 찾아왔습니다. 선물 단가를 5만원 이하로 맞춰야 하게 된 것이죠. 같은 해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김영란법을 이유로 들어 선물 대신 편지를 보내기도 했어요. 다음해 취임한 문 대통령은 김영란법으로 타격을 입은 농가를 배려하고자 경기 이천 햅쌀, 강원 평창 잣, 경북 예천 참개, 충북 영동 피호두, 전남 진도 흑미 등을 추석 선물로 골랐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메시지가 담기다 보니 크고 작은 소동도 끊이지 않습니다. 올해 설엔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대표 명의로 육포를 불교계에 설 선물로 보냈다가 회수하기도 했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추석 때 황태ㆍ멸치 세트를 불교계 큰스님에 보내려다 결례라는 지적에 다기 세트로 교체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추석 선물로 잣ㆍ유가ㆍ육포 등을 고르면서 불교계에는 육포 대신 호두를 보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명절 선물을 정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해당 정부의 국정철학, 대통령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청와대 직원, 참모들이 고르고 대통령은 승인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또 대통령의 부인이 관여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김정숙 여사의 경우 명절 선물을 정하는 데 참여하지 않는다고도 전해집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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