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계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청정한 덕을 칭찬하며, 꽃 중의 군자(花中君子)로 찬탄한다. 이러한 유교인의 ‘연꽃=군자’ 정의로 인해, 연꽃은 불교를 넘어 유교에서도 크게 환영받는 꽃이 되는 것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연꽃 하면 흔히 불교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교미술에서 연꽃은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전에는 이렇다 할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는 경전이 엄청나다. 때문에 특정 주제와 관련해서, 그렇다는 경전을 찾아도 한 수레가 나오고, 아니라는 경전을 찾아도 한 수레가 나온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그런데도 연꽃에 대한 내용은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불교 경전 속 연꽃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염화미소(拈花微笑)’다. 붓다가 영축산에서 가르침을 설하는 도중에 연꽃을 들자, 마하가섭이 빙긋이 웃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중국에서 찬술된 ‘대범천왕문불결의경’에 나오는 것으로 인도적인 부분이 아니다. 또 대승 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연화’ 즉 연꽃이 제목에 들어가 있지만, 막상 경전 안에서는 연꽃이 특별한 상징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연꽃이 불교를 억압한 조선의 궁궐이나 도산서원의 연못 등 유교 안에서도 공공연히 발견된다는 점이다. 막상 불교와는 관계가 약하고, 불교를 싫어한 유교에서는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연꽃이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로 전래한 것은 맞다. 그러나 연꽃의 덕성(德性)을 규정한 것은 의외로 불교의 승려가 아닌 신유교의 시원적 인물인 북송의 주염계(周濂溪ㆍ1017∼1073)다.

염계는 연꽃을 사랑하는 ‘애련설(愛蓮說)’을 찬술하는데, 이 글은 중국의 명문을 모은 ‘고문진보(문편)’에도 수록되어 있는 매우 미려한 글이다. 이 속에서 염계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청정한 덕을 칭찬하며, 꽃 중의 군자(花中君子)로 찬탄한다. 이러한 유교인의 ‘연꽃=군자’ 정의로 인해, 연꽃은 불교를 넘어 유교에서도 크게 환영받는 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못(淵)’이라는 명칭을 ‘연못’으로 대체할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못에 연이 없더라도 연못이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려 때까지 불교가 번성했다손 치더라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염계가 연꽃을 군자로 칭했다는 것은 군자 말고도 꽃에 대한 미칭이 더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설총의 ‘화왕계(花王戒)’를 보면, 모란(목단)은 꽃의 임금으로 등장한다. 또 작약이 꽃 중 재상이라는 표현도 오랜 전통 속에서 확인된다.

그런데 왜 하필 모란이 꽃의 임금이 되는 것일까. 그것은 작약과도 연관되는데, 꽃이 무척이나 크고 화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크고 화려한 풍요로운 미감을 선호한다. 이로 인해 모란이 꽃의 임금, 작약은 재상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동아시아의 꽃 선호에는 국화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국화는 소국이 아니라, 가지와 잎을 치고 인위적으로 꽃만 커다랗게 키운 해바라기 같은 국화다. 이 역시 풍요의 미감인 셈이다.

이쯤 되면 왜 동아시아가 연꽃에 열광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연꽃은 기존에 없던 거대함으로 동아시아의 미감을 강타했다. 물론 연꽃은 모란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이 주염계에 의해 단아하고 수수한 군자의 미로 극찬받으며, 연꽃은 일시에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버린다. 즉 거대한 크기와 더불어 난초와 같은 고아함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과거 종교의 전래는 다양한 가치를 동반하는 문화의 실크로드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문화권적인 장벽에 가로막혀 동아시아에 안착한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연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보다도 동아시아에서 더욱 화려하게 피어난다. 이는 연꽃의 코드가 우리의 전통 미감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커피의 향에 매료된 것처럼,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연꽃의 미감에 흠뻑 빠져들었던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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