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기가 2년 넘게 남았지만 일부에서 집권 ‘4년 차’ 프레임을 세게 돌리고 있다. 힘든 시기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 정부의 정책 집행력은 정점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집권 초반에 비해 영향력은 다소 떨어진다. 인사 카드는 이미 많이 써버렸고,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대중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낸다. 이 때문인지 요사이 언론에 정부를 몰아세우는 논조가 넘쳐난다.
안보ㆍ국방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속절없이 매를 맞고 있다. 일부 언론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핵화 쇼’라고 단정 짓는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문 대통령이 ‘전쟁은 끝났다’고 외쳤으나 돌아온 것은 ‘삶은 소대가리’ 등 북한의 모욕적인 언사뿐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북한이 정신 못 차리고 허튼소리를 해서 답답한데 그걸 가지고 후벼 파니 당황스러울 뿐이다.
이렇게 정부가 궁지에 몰린 상황인데도 도움을 주려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안보ㆍ국방 분야에서 덕을 본 인사들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 이렇게 응원을 자처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그들이 기회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몸을 사리고 있거나 언론사가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를 지원하는 목소리를 내보내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분단 현실에서 안보 국방 분야의 담론은 보수가 독점한다. 권력이 바뀌었지만 이 바닥 판도는 그대로다. 정부, 언론, 학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각과 정책 대안에 대한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 학술적으로는 이를 정책 독점 상태라고 한다. 이 상황에서는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진보 정권하에서 약간 덕을 봤다고 진보에 올인하는 것은 초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대화로 풀자고 하지 않고, 평화를 주창하지 않고 우리가 처한 안보 딜레마를 헤쳐 나갈 방법이 있는가. 남북은 공히 지난 70여년의 세월을 군사력을 키우는 데 몰두해 왔다. 상대의 공격을 거부하는 능력과 그것에 실패했을 경우 응징 보복하는 능력 말이다. 그 결과 우리 삶의 터전은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력이 밀집된 곳이 되었다. 과잉 억제 상태다. 서로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언제라도 우발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현실에 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보수에서는 다 집어치우고 국방력을 강화하라고 한다. 사실 이 정부가 그걸 안 한 게 아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더 열심히 국방력을 강화했다. 강한 국방과 항구적 평화 정착 노력을 병행하자는 것이 이 정부의 모토다. 정부 내부에서는 이 양대 정책기조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국방력 약화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프레임이 계속 돌아간다. 이를 다 알고 있는 이들은 그저 침묵한다.
솔직히 보수의 안보 비전은 구현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것 몇 개만 살펴봐도 그렇다. 우리는 핵을 개발할 수 없다. 핵개발 얘기만 나와도 미국의 무지막지한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또 미국은 남한에 전술핵을 재배치 해주지 않는다. 북한 핵 위협이 남한에 전술핵을 재배치해서 대응할 수준은 아니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면 남는 게 뭔가. 첨단 재래식 전력으로 억제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관한 한 할 수 있는 것을 거의 다했다.
남북은 지금 가지고 있는 재래식 군사력만으로도 그동안 서로가 일궈 놓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어디선가 불꽃만 튀겨도 모든 게 날아간다. 이 상황에서 평화와 군비 통제를 말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억제만 얘기하다 남북 간에 우발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 또 그것이 미중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는데 전쟁 준비가 과도하다. 지금은 평화를 준비해야 할 때라고 보는 것이 맞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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