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긴장 고조시 ‘동맹 때리기’ 나설 수도
이란은 미국과의 갈등 속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하이브리드 전쟁’ 옵션으로 활용하고 있다. 직접적인 물리적 충돌은 피하되 글로벌 원유수송로가 막힐 가능성을 부각시키며 경제적ㆍ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독자 파병’을 택한 만큼 이란이 당장 직접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긴장 지대’로 두려는 자신들의 전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경우 좀 더 공세적인 메시지를 보내올 수도 있다.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주간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사전에 통보했으나 '미국의 모험주의에 동조하는 것은 오랜 양국 관계에 맞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다'라고 답했다"라고 밝혔다. 앞서 17일 외교부가 주한 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정부의 파병 결정을 공식 통보한 후 나온 첫 반응이다. 21일 외교부 관계자가 이란이 밝혔다고 전한 ‘원칙적 우려’ 보다 강경한 메시지다.
정부는 ‘독자 파병’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이란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ㆍ호르무즈 호위연합)에 공조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이드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가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시 외교관계 ‘단교’ 가능성을 언급하자 외교부가 그를 초치해 항의했을 때도 결국은 한국이 IMSC에 참여하는 상황을 가정한 대목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앞서 이란은 지난해 8월 호주가 영국과 바레인에 이어 세 번째로 IMSC에 합류를 결정하자 “IMSC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 피해를 스스로 져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지난해 12월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이 일본의 중동 파병 방침에 대해 “외국 군대가 중동에 주둔하는 건 안정과 평화,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 역시 미국의 동맹국들이 IMSC에 동참하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21일 이란 외무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의 이유를 사전에 이란 정부에 전달했고, 미국의 IMSC와는 관계없다고 했다”라고 확인했다. 우리 정부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IMSC와 무관한 독자 파병 카드를 택함으로써 이란과의 직접적인 갈등은 피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될 경우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란이 미국 대신 미국의 동맹국들을 겨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이란은 지난 8일 가셈 솔레이마니 사망에 대한 보복공격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반격에 미국의 우방국들이 가담하면 그들의 영토가 우리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외적인 군사충돌 상황에서의 주장이지만, 미국의 우방국을 때림으로써 동맹 간 균열을 일으키고 해당국 내 반전여론을 부추기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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