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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철수와 ‘조계종 육포’

입력
2020.01.21 18:00
수정
2020.01.21 18: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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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이 2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열사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이 20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열사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19대 대선을 4개월 남짓 앞둔 2017년 1월 12일 저녁,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인천공항 기자회견장에 섰다. 대선 출마를 알리는 사실상의 출정식이었다. 핵심 메시지는 ‘정권교체를 넘어선 정치교체’. 그는 취재진과 지지 인파로 귀국 현장이 북새통을 이룬 것에 크게 고무된 듯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사심 없는 결정을 하겠다”고 출마를 사실화했다. 그러나 보름여 지난 2월 1일 그는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뜻을 접는다”고 돌연 물러섰다. (성묘 논란 등)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를 감당할 수 없고 구태의연한 정치권에 실망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엊그제 인천공항의 같은 자리에 섰다. 2018년 지방선거 패배 후 독일과 미국에 머물다 16개월 만에 귀국한 그의 일성은 “실용적 중도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지지자들은 연신 ‘안철수’를 연호했고 그는 큰절로 답했다. 그는 4ㆍ15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하며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는 게 정계 복귀의 목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2022년 대선을 직접 겨냥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 이날 안철수를 보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기시감(deja vu)을 느꼈다고 한다. 3년 전 반기문이 생각나서다. 정치의 빈 공간을 포착한 시기와 명분은 분명 유사하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기회 앞에서 철수와 좌절을 반복하며 국민의 기대와 사랑에 부응하지 못한 이유를 ‘정치초년생’의 부족함 탓으로 돌린 그는 꽃가마에 익숙한 반기문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다. 시련과 실패로 얼룩진 정치적 산전수전을 겪으며 나름 정치문법을 익히고 맷집도 커졌을 테니 말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인내도 있을 법하다.

□ 하지만 안철수의 입장문만으론 그가 왜 지금 귀국했는지 알기 어렵다. “정치가 행복한 국민, 공정한 사회, 일하는 정치 등의 3대 지향점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하는 얘기고, “변화를 위한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문 정부의 폭주 바이러스를 저지하려고” 복귀했다는 말은 ‘누구와 언제 어떻게’가 없어 공허하고 감동이 없다. 귀국 후 ‘경청 투어’에 나선 그는 어제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만난 뒤 “보수통합은 여권이 바라는 함정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혁신이 먼저라고 말했으나 여전히 ‘어떻게’는 없었다. 지난주 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계종에 육포를 설 선물로 보냈다가 급히 회수하는 소동을 빚었다. 안철수의 ‘선한 목자’ 메시지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조계종 육포’ 신세가 될지 모른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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