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노란 풍선에다 흔한 스마일 캐릭터를 그려 넣어둔 것이다.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캐릭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눈, 코, 입이 모두 알파벳으로 되어 있다. 여러 얼굴에 나타난 이 글자들을 조합해보면 ‘nice’, ‘lucky’, ‘cute’, ‘cool’ 같은 단어들을 만들 수 있다.
긍정적이고 밝은, 기분 좋은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로 만든 표정을 기입한, 익살스러운 얼굴의 풍선이 가득한 방이다 보니 공간 전체가 들뜨고 밝은 느낌이고, 이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조차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이 전시는 헝가리 출신 작가의 ‘이모그램스 위드 러브(emograms with LOVE)’전. 다음달 23일까지 인천 관교동 롯데갤러리 인천터미널점에서 열린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이모그램(emogram)’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자, 이번에 정식으로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이런 작품을 누가 했을까 싶은데, 하필이면 작가 이름조차 ‘키스미클로스’다. 아니 턱수염 기른 남자 작가에게 이런 사랑스러운 이름이라니. 작가는 딱 잡아 뗐다. Kiss는 김씨, 이씨처럼 헝가리에서 아주 흔한 성씨이고, 헝가리는 한국처럼 성씨 다음에 이름을 쓰기 때문에 자기 이름 자체가 ‘Kiss Miklos’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굳이 띄어 쓰지 않는 건, 작품만큼이나 달콤하게 보이고 싶어서일 게다.
작가가 말하는 ‘이모그램’이란 ‘이모티콘’과 ‘픽토그램’을 합친 말이다. 디지털 시대 인간 사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고민하다 온라인상 감정 표현이 현실 세계로 넘어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결과 알파벳은 표정이 됐고, 3차원적으로 입체화된 이 ‘글자 얼굴’들은 ‘볼 룸(ball room)’을 가득 채우게 됐다. 아이들은 물론, 쭈뼛쭈뼛 이 공간에 들어섰던 어른들조차 시간이 잠시 지나면 마음껏 공을 던지며 뛰어 놀게 된다. 이 자체가 작가가 의도한 감정 교환이다.
사실 이런 얼굴 그림이야 스마트폰 시대를 사는 한국 사람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차이점이라면, 우리는 그걸 완전한 그림으로 표현하고 글자는 필요에 따라 첨가하는 요소 정도로 취급한다면, 이 작가는 오직 글자만으로 감정을 표현해내려 했다는 점이다. 직관적 그림이냐, 간접적인 문자냐, 문화의 차이를 곱씹게 되는 부분이다.
작가는 이모그램을 더 확장시킬 계획이다. 기자에게 슬쩍 보여준 핸드폰 사진첩엔 ‘shy’, ‘sexy’, ‘comic’ 같은 단어들을 응용한 이모그램들을 이미 만들어둔 상태였다. 작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 형태 역시 흥미롭다”며 한글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번 한국전에 작가는 자신의 신작 ‘러브’ 시리즈도 선보인다. 사랑이란 감정을 분홍색 폴리폼 600여개로 묘사해냈는데 작가는 “어린 시절 시골 밀밭의 보들보들한 촉감을 되살렸다”고 했다. ‘키스미클로스’다운 선택이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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