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상장사 사외이사가 한 기업에 6년 이상 재직할 수 없게 된다.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가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한다는 오랜 비판에 정부가 사외이사 제도 도입 22년 만에 개정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재계에선 당장 “사외이사 구인난이 불가피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단기적 혼란에도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법무부ㆍ금융위원회 등은 이런 내용을 담은 상법ㆍ자본시장법ㆍ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된 3개 법 시행령은 대통령 재가를 거쳐 상법ㆍ국민연금법 시행령은 공포 후 즉시 시행,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2월1일부터 시행된다.
◇“사외이사는 대주주가 시켜주는 것”
개정안 중 특히 주목되는 건 ‘사외이사 임기 제한’이다. 법무부는 상장사의 사외이사가 한 기업에서 6년, 계열사를 포함해 9년 이상 근무하는 것을 금지했다.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총수 일가 또는 최대주주의 독단 경영을 차단할 목적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도입됐다.
하지만 도입 후 20년 넘도록 여전히 사외이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견제 역할보단 대주주에게 유리한 의사결정만 해준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지배구조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대주주가 ‘시켜주는 것’이란 인식이 국내에선 뿌리 깊게 박혀있다”며 “사외이사를 시작할 때부터 대주주에 반기를 들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실제 대주주에 우호적일수록 재임 기간이 길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도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문화를 개선하고자 임기를 제한한 것이다.
◇재계 “기업 자율성 해친다” 반발
재계는 반발한다. 사외이사 임기 제한이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억지로 새 사외이사를 구해야 하는 부담을 안긴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사외이사의 임기 제한은 인력운용의 유연성과 이사회의 전문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외이사에 앉힐 만한 경력자를 찾는 게 쉽지 않다”며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바꿔야 하는 사외이사가 있는 기업은 당장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뀐 시행령에 따르면 오는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대기업군 상장사 사외이사 853명 중 76명이 교체돼야 한다. 또 전체 상장사 가운데는 566개사의 사외이사 718명이 새로 선임돼야 할 걸로 상장회사협의회는 추산했다. 이 중 대부분(494개사, 615명)을 차지하는 중소ㆍ중견기업은 인지도나 보수 면에서 대기업보다 사외이사 구하기가 더 어려울 전망이다.
◇“다양한 이사회 구성이 견제의 전제조건”
반면 이런 재계의 반발이 오히려 임기 제한의 필요성을 반증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이사회의 전문성은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느냐이고, 견제는 사외이사의 ‘다양한 구성’이 기본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대부분 사외이사가 법조인, 교수 등으로 채워진 상황에서 어떤 전문성이 담보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임기 부분이 개정되는 건 사외이사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라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 중인 한 회계사는 “이렇게 임기 제한이라도 해야 기업들이 새 인물을 물색하고 인력 풀을 늘리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점점 ‘친 대주주’ 인사가 설 자리가 줄어 이사회의 견제 기능도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외이사 선임 부담이 늘었다는 재계의 반발에 이날 법무부는 적극 반박했다. 법무부는 “임기 제한으로 인한 신규 사외이사 수요는 회사당 평균 1.3명 정도인데, 이전에도 같은 규모의 신규 사외이사가 선임됐었다”고 설명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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