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오만이 가장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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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 오만이 가장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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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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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심판론 우세’ 여론에 안심하는 文 정부

靑 참모 출마, 지역구 세습, 말실수 등 악재

분노 쌓이면 ‘축배’가 ‘독배’ 되는 건 한순간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와 첫 주례회동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4년 전 20대 총선은 여당인 새누리당이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였다. 안철수와 문재인이 갈라서 야권은 분열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그리 낮지 않았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새누리당이 의석 과반은 물론 180석까지 차지할 걸로 내다봤다. 하지만 뚜껑을 열었더니 제1당 유지도 실패한 처참한 결과가 나왔다. 그제서야 “극치에 달한 오만이 패인”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권의 시기, 대통령의 지지율, 국정 운영 성과 등이지만 승패는 결국 집권세력의 독선과 오만 여하에 좌우된다. 국정 운영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지, 아니면 여론을 무시하고 전횡을 일삼는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수면 아래 가려진 빙산처럼 ‘진짜 민심’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듣기로는 여론조사에서 정권 심판론보다 야당 심판론이 높게 나오자 안심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일자리와 부동산, 남북관계 등에서 주춤하고 있으나 그래도 비전과 쇄신 없이 구태만 답습하는 자유한국당보다는 낫게 평가받는다는 게 여권의 생각이다. 과연 그런가. 여론조사에 나타나지 않는 민심의 속살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여권은 ‘4+1협의체’라는 요술봉으로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웠다. 여권 지지층은 “속 시원하다”는 반응인 반면 한국당 지지 세력은 속으로 분을 삼키고 있다. 그 와중에 민주당 의원들이 자축 파티를 하고, 문 대통령이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한 것이 화를 키우고 있다. 한국당의 ‘발목 잡기’로 개혁 법안 처리가 지체된 것은 분명하지만 합의 처리 불발에 대한 집권당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분열과 배제의 대상이 된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 눈에도 오만하게 비쳤을 법하다.

속전속결식 검찰 인사도 비슷한 모양새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없으나 거칠게 몰아붙이는 모양새는 도가 지나치다는 인상을 준다. 하필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여야 하는지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장관을 언급하며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 대목도 반대편의 속을 긁었다. 그 가족의 일탈에 상처 입은 다수 국민의 심정을 생각했어야 했다.

청와대 참모들의 무더기 총선 출마는 기름을 부은 격이다. 국정은 팽개친 채 잿밥만 챙기려 한다는 비판은 둘째치고 청와대가 ‘총선 준비 캠프’로 인식될 여지가 크다. 총선 이후 여당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해 정권의 레임덕을 막고 퇴임 후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 친문계를 대거 포진시킨다는 말까지 나온다. ‘진박 감별사’라는 희대의 조어를 만들어냈던 이전 정권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으로 비칠 만하다.

민주당의 ‘악재’도 심상치 않다.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문석균씨의 지역구 세습 논란은 조국 사태로 불붙은 공정과 평등의 문제를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같은 당 금태섭 의원에 대한 ‘표적 출마’를 선언한 정봉주 전 의원과 투기 의혹에 휘말려 불명예 퇴진했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출마를 두고도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여기에 이해찬 대표의 장애인 폄하 발언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동네물이 많이 나빠졌다”는 지역구 주민 모욕 발언 등 설화까지 도마에 올랐다. 2012년 총선에서 한명숙 당시 민주당 대표가 주도한 ‘노이사(친 노무현, 이화여대, 486)’ 공천과 ‘나꼼수’ 출신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동으로 예상 밖의 참패를 당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직전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보여준 표심을 잊지 않는 정당이 다음 선거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는다는 건 입증된 사실이다. 2년 전 6ㆍ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다. 당시 나타난 유권자들의 요구는 민생과 개혁, 협치였다. 지금 여당은 그 바람에 얼마나 부응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축배’가 ‘독배’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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