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스페인 전 독재자 프랑코의 유해 이장을 앞두고 그의 유족은 프랑코의 관을 덮겠다며 검은 독수리 문장의 파시즘 깃발을 공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의 유해가 지난해 10월 ‘전몰자의 계곡’ 특별묘역에서 마드리드 북부 엘파르도의 민고루비오 주립묘지의 프랑코 가족묘역으로 이장됐다. 전몰자의 계곡 묘역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파시스트 군대에 희생된 공화국 군인 등 내전 희생자 3만3,000여명이 묻힌 국립묘지.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화해’를 명목으로 1940년부터 약 18년간 공화국 포로 등 2만여명을 동원해 묘역을 꾸몄고, 가장 넓고 좋은 자리에 묻혔다. 그건 공화국 이념에 대한 조롱이고 내전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프랑코 사후 44년 만인 지난해, 사회노동당 출신 총리 페드로 산체스가 프랑코 이장안을 냈고, 의회가 승인했다. 과거사 청산의 선언적 조치이자 파시즘 독재를 그리워하는 극우 집단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행위였다. 유족 및 극우 집단은 당연히 반발했다. 소송과 재판을 거쳐 단행된 이장은 충돌을 우려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프랑코의 유족은 그의 관을 파시즘의 검은 독수리 문장 깃발로 덮겠노라고 밝혔다. 프랑코 정부의 국기에도 그려진 검은 독수리 문장은 나치의 스와스티카에 맞먹는 상징이었다.

나치와 달리 프랑코는 내전의 승자였다. 그의 주된 적은 유대인이 아니라 공산주의자였다. 냉전기 서방 세계는 그의 국가 범죄를 묵인했고 사실상 후원했다. 그래서 스와스티카가 죄악의 상징으로 공인된 것과 달리 검은 독수리는 숨통이 끊기지 않았다. 동시에 세습 귀족과 종교ㆍ자본권력, 입법ㆍ사법ㆍ행정을 망라한 관료 집단의 강고한 프랑코 기득권 연대도 건재했다. 프랑코 사후 후계자인 후안 카를로스1세의 입헌 왕정이 출범한 뒤 시작된 기득권 집단의 수성(守城)을 위한 발악은 프랑코 시절만큼이나 난폭했다.

1977년 1월 24일 수도 마드리드 중앙역 인근 아토차 거리의 공산당 산하 노동자위원회(CCOO) 사무실에 총을 든 괴한들이 난입, 노동법 변호사 등 노동운동가 5명을 살해하고 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어용노조의 전횡에 맞선 파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며칠 뒤 열린 장례식에는 프랑코 사후 최대 규모인 10만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그 사건이야말로 스페인 민주화의 분수령이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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