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피고인이 실제로 어머니를 살해한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한편으로는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심 또한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재판장은 형사법의 대원칙을 따라 의심의 이익을 피고인 쪽에 두었던 것이다. 영화 ‘배심원들’ 스틸 이미지. CGV 아트하우스 제공

형사재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매 사건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고스란히 밝혀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예외 없이 유죄를,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무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오류 제로의 형사사법시스템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재판은 이상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범죄의 밀행성과 유한한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는 진실 발견에 대한 현실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상반되는 주장과 증거 속에서 긴가민가의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일본의 라쇼몽이라는 영화를 보면 진실 발견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살인 사건을 직접 경험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게 전개된다.

그렇다면 아무리 해도 도저히 진실을 확신할 수 없을 때 재판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판관은 재판불능(non liquet)이라는 이유로 판단을 회피할 수 없다. 유죄든, 무죄든 어느 쪽으로든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의 오류 가능성이 대두된다. 죄가 없는 사람을 유죄라고 판단하는 오류와 죄가 있음에도 무죄라고 판단하는 오류이다. 영어로는 전자를 false positive라고 부르고, 후자를 false negative라고 부른다.

이 문제에 대해 문명국가의 형사법은 의심의 이익(benefit of the doubt)을 피고인 쪽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in dubio pro reo)”이라는 라틴어 법언(法諺)이 바로 그것이다. 이상론으로야 두 가지의 오류 모두 생기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어느 한 쪽의 오류가 불가피하다면 죄 없는 애먼 사람을 잡는 것보다는 10명의 죄인을 놓치는 쪽이 낫다는 인권존중의 가치 결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배심원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피고인의 혐의는 자신의 어머니를 망치로 내려친 뒤 아파트 베란다에서 밀어 떨어뜨려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판결을 선고하는 날 재판장은 정작 유죄판결문을 준비했음에도 막판에 생각을 바꾸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통칭되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만이 진실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국민참여재판의 첫 배심원단이 다시 한번 일깨워줬습니다.”

영화를 보면 피고인이 실제로 어머니를 살해한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한편으로는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심 또한 제기된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재판장은 형사법의 대원칙을 따라 의심의 이익을 피고인 쪽에 두었던 것이다.

‘의심의 이익’은 비단 형사재판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 적용해 볼 만한 유용한 개념이다. 정책의 수립과 규제의 분야에서 ‘의심의 이익’을 어느 쪽에 둘지를 심사숙고한다면 정책의 오류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의 공정거래법 학계에서는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닌 사안을 법 위반으로 과잉 규제하는 오류와 법 위반임에도 이를 적발하지 못하는 과소 규제의 오류 중 어느 쪽이 더 폐해가 많은지를 놓고 오랜 기간 열띤 논쟁이 전개되어 왔다. 어떠한 정책을 선택하느냐는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여러 오류 가능성 중 어느 쪽이 폐해가 더 적은 것인가라는 문제의식하에 의심의 이익을 어느 쪽에 둘지 고민해 보는 실용적 지혜는 바람직하다.

나아가 ‘의심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우리의 일상 생활속으로 확장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된다면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진실과 팩트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 보지 않은 채 타인을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틀렸다고 비난하는 사례는 줄어들지 않을까.

김희관 변호사ㆍ전 법무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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