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후변화
지구는 아름다운 행성인 동시에 위험한 행성이다. 오늘날 이 지구의 환경이 작지 않은 위험에 처해 있다. 그 위험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기후변화란 우리 인간 활동의 결과로 지구 대기의 구성이 바뀌고 기후가 자연적 변동의 범위를 넘어서는 현상을 뜻한다. 기후변화가 주목 받은 까닭은 지구 온난화에 있다. 2013년에 나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5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0.85도 정도 상승했다. 이 수치는 물론 ‘자연적 변화’와 ‘인위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산업혁명 이전 1만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자연적 변화로 0.5도 이내에서 변동했다. 그런데 석탄ㆍ석유 등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라는 인위적 변화가 산업혁명 이후 지구 기온을 빠르게 상승시켜 왔다. 기후 변화란 바로 이러한 현상을 지칭하고 포괄한다.
최근 기후변화는 폭염ㆍ태풍ㆍ홍수ㆍ한파ㆍ산불 등의 기상 이변과 재난을 낳아 왔다. 나아가 생물다양성 감소, 해수면 상승, 식량 생산 감소, 그리고 미세먼지 증가에 따른 대기 악화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일각에선 그 위험성이 과장돼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지만, 기후변화는 이제 부정하기 어려운 과학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대기학자 조천호는 기후변화에서 지구의 역동성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온난화 요인이 온실가스 배출에만 있지 않기 때문에 지구 기온이 이산화탄소 축적량에 비례해 상승하지 않는다. 지구는 외적 충격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태를 복원시킬 수 있는 일종의 복잡 시스템이다. 문제는 이 지구 자동조절 시스템이 교란되어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고, 갈수록 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지구적 차원에서의 노력은 꾸준히 시도돼 왔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되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파리협약은 올해 말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2021년부터 적용된다.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했다면, 파리협약은 195개 당사국 모두에게 구속력을 행사하는 첫 번째 기후합의라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최근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란 말로 대체되고 있다. 기후가 처한 현실의 긴박함과 비상 상태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맥락이다. 이러한 기후위기의 계몽에는 특히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역할이 컸다. 툰베리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등교 거부 운동을 주도했고, 지난해 8월에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글로벌 기후 파업’에 동참해 힘을 더했다. 그리고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 앞에서 “당신 지도자들이 우리 모두를 실패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지구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2020년대와 기후변화의 정치학
우리 인류를 절멸시킬 위험을 안고 있는데도 기후변화에의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까닭은 뭘까.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위험으로서의 기후변화의 특징을 주목한다. 기후변화는 위험의 실체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예방 및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에서 얻을 수 있는 더 큰 보상보다는 작더라도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운동가 조지 마셜은 ‘기후변화의 심리학’에서 기후변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런데도 기후변화 대응에 이렇게 둔감한 까닭은 우리의 미온적인 태도에 있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간의 관계에 있다기보다 심리적 편향을 위시한 가치와 이념에 있다. “그런 거창한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죠”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기후변화를 애써 무시하려는 심리적 태도가 그 대응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더하여, 무임승차 유혹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다. 다른 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우리나라가 그 대응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이기적인 타산 역시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치보다 이익을 우선하는 국제관계를 고려할 때 무임승차 문제는 기후변화 대응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작지 않은 어려움을 안겨준다.
최근 호주 산불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폭염ㆍ한파 등의 재난과 피해가 주로 사회적 약자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응에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20년대에는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분명히 자리 잡고, 그 위기가 다시 대재난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정치적 결단과 행동을 요구한다. 오늘날 기후 행동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재적 과제다.
정치학자 정진영은 이러한 기후 행동의 방향을 세 갈래로 정리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소, 배출한 온실가스를 포집해 매장하는 등의 방법을 통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의 약화, 그리고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태양열 에너지의 부분적 차단의 방법이 그것들이다.
나아가 정진영은 다시 정부ㆍ사회ㆍ개인의 차원에서 기후 행동의 구체적인 전략들을 제시한다. 먼저 정부 차원에서는 태양광ㆍ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증가시키는 에너지 전환 정책과 이 과정에서 소득을 높이고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녹색 뉴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편 사회 차원에서는 다양한 전문가그룹과 시민단체의 활동이 기후위기 대응의 계몽과 실천에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 차원에서는 기후변화 이슈에 민감한 세계시민이 되는 동시에 기후 행동에 대한 의식을 가진 현명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선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두드러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미국의 탈퇴를 통보했다. 이 결정은 미국과 함께 양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꼽히는 중국의 기후협약 이행 의지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기후변화 대응의 미래가 밝다고 보기 어려운 게 현재의 정직한 상황이다.
이 지구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그 주인은 자연과 인간을 모두 자신의 식구로 넉넉히 품어 안은 지구 전체다. 지속 가능한 생명의 지구를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인류에겐 존재한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자연을 인간의 욕구충족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생태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적 계몽과 적극적 실천이 2020년에 부여된 가장 중대한 과제 중 하나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한국사회와 기후변화
최근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동안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왔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2017년 기준 이탄화탄소 배출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미국ㆍ일본ㆍ독일에 이어 4위를 차지했고, 그 증가율은 1위를 기록했다.
환경재단 상임이사 이미경은 우리 정부가 기후변화를 남의 나라 일인 것처럼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석탄발전소를 60기나 가동하면서 7기를 더 건설하고 동남아로 수출까지 하며, 탄소배출의 경우 계속 증가해 201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7억톤을 넘겼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앞서 말했듯 개인적ㆍ사회적ㆍ국가적 차원의 다중적 전략이 요구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국가 정책이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기 위한 과감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이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기후변화를 선구적으로 계몽한 이는 생물학자 최재천이다. 그는 2011년 대기학자 최용상과 함께 ‘기후변화 교과서’를 펴낸 바 있다. 최재천은 기후변화의 진실이 아주 불편하고, 이 불편한 진실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길은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아주 불편한 진실과 조금 불편한 삶’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로 삼을 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소개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