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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60여명의 일터 “장애아 부모님들께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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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60여명의 일터 “장애아 부모님들께 보여주고 싶어요”

입력
2020.01.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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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성 대구드림텍 본부장

최재성 대구드림텍 본부장은 '장애인 인생 조력자 페이스메이커’로 통한다. 진승희 객원기자
최재성 대구드림텍 본부장은 '장애인 인생 조력자 페이스메이커’로 통한다. 진승희 객원기자

중증장애인다수고용사업장인 대구드림텍에서 근무하는 최재성(48) 본부장은 자칭 ‘장애인 인생 조력자 페이스메이커’다. 장애전문 어린이집과 장애인들이 청소년기를 보내는 지역사회재활시설, 그리고 직업재활시설까지 두루 경험한 까닭이다.

최 본부장은 1997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첫 출근에 마당까지 달려나와 “최 선생요! 안녕하세요”하며 두 팔을 벌려 와락 안기는 장애인들에게 움찔하는 표정을 비치면서 사회복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6년 동안 사회복지사로서 기본기를 쌓았지만, 아직 혈기가 왕성한 때여서 불합리해 보이는 상황들을 버텨내지 못하고 사직서를 썼다. 원래 직업이었던 굴삭기 기사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학교 동기 형의 주선으로 법인 내 복지관 부설 어린이집 원장으로 다시 입사했다. 그렇게 사회복지사로서의 두 번째 프로필이 시작됐다.

당시 어린이집 원장은 유아교육·보육 관련 전공이 대부분이었지만 사회복지 경력 5년 이상으로도 어린이집 원장 임용이 가능했다. 주위의 우려도 많았고 워낙 낯선 일이라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겠지. 어린이집 통학차량 운전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1년만 버텨볼 생각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8년간 근무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과 학부모, 어르신들과 만나며 건설 현장에서 습관이 된 거친 말투와 행동이 온전하게 사라졌다.

당시에는 사회복지사가 어린이집 원장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보수교육을 가면 교육대상 원장 중 남자는 혼자였고, 아울러 사회복지 가치관과 사뭇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는 심리적 갈등이 만만찮았다. 일반 어린이집 원장 자격을 취득 후 장애아동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2010년에 장애전문 어린이집 원장 자격을 취득하였다. 이듬해 법인 내에서 인사발령을 받아 장애전문 어린이집으로 보직을 이동했다.

아동 숫자는 줄었지만 그에 반해 교사는 4배수가 늘었다.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조직관리에 있어서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뼈저리게 깨달은 시간이었다. 최 본부장은 “여기에 오는 모든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었고 그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장애전문 어린이집에서의 8년, 총 16년의 보육시설 근무 기간을 보내면서 장애든 비장애든 아이들은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과 함께 장애아동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도 사라지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부모 상담입니다. 첫 면담에서 아이 이름만 물어도 우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아이의 장애를 인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래서 앞으로 갈 길이 너무 막막하게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고 난 뒤부터 자신 있게 상담할 수 있게 됐다.

“아이에게 오롯이 매달리지 말고, 우리 어린이집을 믿고 아이를 맡기라고 말씀드렸어요. 어린이집에서는 전문적으로 최선의 케어를 하고 있거든요. 공부하시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어요. 국가나 지자체에서 장애 아동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혜택이 많거든요.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출생에서 취업, 이후 지역사회에서 직업생활까지 ‘장기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다고 조언했죠.”

그때 맺은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안부를 묻고 간간이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거북이 마라톤 중인 부모님들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8년 12월에 대구드림텍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2010년에 문을 연 대구드림텍의 주력사업은 LED조명, 배전반, 보안문서 파쇄사업 등이 있다. 그외에 기타 임가공 사업과 드림마켓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드림텍에는 현재 중증장애인 근로자 60여명과 직원 15명이 있고 장애인에 대한 고용 장려금, 일자리 안정자금 외 사업수익과 후원금으로 근로자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다. 최저임금 법제화 추진에 따라 매년 인건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으며, 60%이상의 인건비를 다양한 네트워크 마케팅을 통한 사업수익으로 충당하고 있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장애인들이 근무하는 만큼 우여곡절도 많다. 최근 퇴근을 하던 근로자 한 명이 리모델링 중인 건물에서 인부들이 놓아둔 커피를 가지고 나왔다. 지나가던 교통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잡혔다. 근로자는 당황스러워서 “집에 갈래. 집에 보내 달라!”고만 외쳤다. 다행히 퇴근길에 그 장면을 목격한 직원이 달려가 경찰에게 발달장애가 있고 음식에 대해 집착성이 있다면서 선처를 호소해 간단한 절차를 거친 후 훈방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대구드림텍에서도 어린이집과 마찬가지로 부모 간담회를 진행했다. 처음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어린이집 부모님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고 했다. 베테랑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

“드림텍 부모님들을 보면서 장애어린이집 부모님들을 드림텍으로 초청하고 싶었어요. 버티고 버티면 이런 미래가 펼쳐진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죠. 대기업 직원만큼은 아니겠지만, 번듯한 직장에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막막한 기분을 씻어내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운영의 입장에서 힘든 부분도 있다. 대구시 8개 구·군 중 장애인 생산품 구매액 1%를 초과하는 곳은 2018년 기준 달서구밖에 없다. 최 본부장은 “법으로 정한 만큼이라도 지켜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1월은 가장 바쁜 달이다. 설 명절 시즌을 맞아 명절선물세트를 판매한다. 최 본부장은 “수익 창출을 위해 불법유통물품 제외한 모든 물품을 유통시킨다는 의지로 유통업에도 뛰어들었다”면서 “대구드림텍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차별 없는 복지기업 실현의 꿈을 이루어 가겠다”고 말했다.

진승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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