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20세기 우리 경제가 겪은 고난과 영광을 온몸으로 구현한 인물이다. 1942년 만 20세에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온갖 고생 끝에 롯데를 설립하고 응용화학 지식을 바탕으로 풍선껌을 만들어 부를 쌓기 시작해 ‘일본 10대 재벌’ 자리에 올랐다.
그는 1967년 한국에 돌아와 호남석유화학 인수로 중공업 진출의 꿈을 이뤘고, 1981년 허허벌판이던 잠실 개발에 나서 국내 최고층 빌딩 롯데월드타워 건설로 결실을 보았다. 1970ㆍ80년대 대부분의 대기업이 정부의 특혜대출에 의존해 사업을 확장할 때 롯데는 철저한 무차입 경영을 실천해 IMF 외환위기 때 진가를 발휘했다. 한ㆍ일 양국 재계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롯데가 국내 재계 5위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규모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기보다는 신 명예회장 일인 경영 체제를 고집하면서 여러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후계 구도를 둘러싼 장남과 차남의 갈등 와중에 신 명예회장의 판단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말에는 가족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증여세 포탈 등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혼란의 와중에 롯데는 중국에서 큰 손실을 보고 철수했고 경영권 분쟁이 법정의 다툼으로 비화되는 등 타격을 입었다. 신 명예회장의 뒤를 잇는 신동빈 회장은 최근의 사업 부진을 회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영권 승계 과정에 상처 입은 롯데의 이미지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신 회장은 지난해부터 지배구조 개편 등을 추진하며 ‘뉴 롯데’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신 명예회장의 타계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등 재계 ‘창업 1세대’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창업 1세대’가 추구한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은 기업인들이 여전히 간직해야 할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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