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육ㆍ해상 실크로드ㆍBRI)’ 육성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최근 중동발 갈등으로 미국의 관심이 멀어진 틈을 타 선물 보따리를 앞세워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끌어 안으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19일 중국 신화통신과 미얀마타임스 등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까지 이틀 동안 미얀마를 국빈 방문, 양국 경제협력을 위한 협약을 대거 체결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의 미얀마 방문은 2001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이후 19년 만이다.
“양국 관계의 새 장을 열 것”이라는 현지 매체들의 기대대로 시 주석이 내놓은 당근은 두둑했다. 방문 기간 양국이 체결한 양해각서(MOU)는 33건에 이른다. 이 중 13개가 BRI과 관련된 도로, 철도, 에너지 등 인프라 구축 사업. 미얀마타임스는 “핵심은 중국-미얀마 경제회랑(CMEC), 특히 벵골만의 차우크퓨에 경제특구와 심해항 조성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오랫동안 눈독을 들인 사업이다. 신화통신도 “이 프로젝트는 시 주석의 핵심사업인 BRI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정도면 ‘통 큰’ 경제협력 정도로 여길 법하지만 순탄치 않았던 양국 관계를 떠올리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양곤 외교가 관계자는 “중단되긴 했지만 2009년부터 메콩강 상류에 추진됐던 밋손댐 건설사업을 통해 미얀마 내에는 ‘중국 자본=약탈자’라는 뿌리 깊은 의구심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밋손댐은 중국에 필요한 수력발전 시설이었지만 하류 생태계 및 농ㆍ어업 파괴를 우려한 미얀마의 반대로 중단됐다. 껄끄러운 양국 관계의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차우크퓨는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구상의 핵심이다. 중국 쿤밍(昆明)으로 이어지는, 약 700㎞ 길이의 미얀마 송유관 구간이 시작되는 곳이다. 향후 경제특구 건설 등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중국 본토에서 남중국해-말라카 해협을 경유하지 않고 인도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익명을 요구한 미얀마 언론인은 “미국과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해양으로 직행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란 의미”라고 설명했다. 시 주석도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과 회담에서 경제회랑을 “가장 우선시하는 BRI 사업”이라고 단언했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이 팔을 뻗은 곳은 미얀마뿐이 아니다. 시 주석은 앞서 16일엔 베트남 수뇌부를 예우하며 ‘고객 관리’에 공을 들였다. 베트남 현지 매체 탄닌에 따르면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은 ‘공산당 창당(2월 3일) 90주년’ 등을 앞두고 시 주석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베트남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으르렁거리긴 하지만 올해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의장국임을 감안해 의전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 외교 수장인 왕이(王毅) 외교부장도 새해 첫 해외 방문지로 이집트, 부룬디,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30년째 이어진 관행이다. 그는 “(아프리카에는) 전통적 친선과 고난을 함께해 온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트라 양곤 무역관 관계자는 “로힝야 사태와 계속된 테러 등으로 미국과 유럽이 발을 빼는 사이 중국이 동남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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