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신동빈(64)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65)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자 “롯데는 ‘형제의 난’도 대물림하느냐”는 말이 회자됐다.
5남 5녀 중 맏이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껌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8년 롯데제과 설립을 시작으로 국내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삼남인 신춘호(83) 농심그룹 회장, 막내 남동생 신준호(78) 푸르밀 회장, 막내 여동생 신정희(73) 동화면세점 사장을 경영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제 간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동생들이 분가하며 신 명예회장의 곁을 떠났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일본 롯데에서 일하다 1965년 한국에서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이 라면 사업 진출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신춘호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고, 이 과정에서 두 형제는 의절했다. 신춘호 회장은 선친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오랜 기간 신격호 명예회장을 보좌했다. 신준호 회장은 롯데건설과 롯데제과에서 대표이사를 지냈고, 1996년 롯데햄∙우유 부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30년 형제애는 1996년 부동산실명제가 도입되며 깨졌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본인과 신준호 회장의 이름으로 반반 나눠 갖고 있던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가 화근이 됐다. 이전까지 신격호 회장을 잘 따랐던 신준호 회장은 이 부지는 아버지에게 직접 물려받은 땅이라며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해 법정 소송을 치렀다. 결과는 맏형의 승리였다. 신준호 회장은 이후 그룹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됐고,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에 취임했다가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신 명예회장은 24살 차이가 나는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과도 법적 싸움을 벌였다. 신정희 사장과 남편 김기병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허락 아래, 롯데그룹과 아무 지분 관계가 없지만 ‘롯데’라는 이름과 원 안에 로마자 ‘L’ 3개가 겹쳐진 롯데 마크를 사용한 롯데관광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롯데그룹은 2007년 일본 관광기업 JTB와 합작해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롯데관광이 롯데 이름과 마크를 쓰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냈다. 결국 롯데관광은 롯데 마크 사용만 중지하고 이름은 그대로 쓰고 있는 중이다.
롯데그룹에서 분가해 나온 신 명예회장의 동생들은 독자 경영을 펼치며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다. 특히 신춘호 회장은 ‘국민 과자’ 새우깡과 ‘국민 라면’ 신라면을 탄생시키며 농심을 매출 4조5,000억원 규모의 우리나라 대표 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1970년대 초반 한국에는 가볍고 간단하게 먹을 만한 과자가 거의 없었다. 농심은 1971년 고소하고 담백하며 기름과 설탕이 거의 함유되지 않은 새우깡을 출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새우깡은 그 이름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신제품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심하던 신춘호 회장은 유치원에 다니던 막내딸이 아리랑 발음이 어려워 혀 짧은 소리로 ‘아리깡’이라고 하는 걸 듣고 당시 개발 중이던 새우 스낵 이름에 ‘깡’을 붙였다. 이후 감자깡, 양파깡, 고구마깡이 나오며 ‘깡’은 스낵의 동의어가 됐다. 농심은 1983년 안성탕면, 1986년 신라면을 각각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신 회장은 새우깡을 비롯해 너구리, 둥지냉면 등 농심 ‘효자 상품’들의 네이밍을 직접 한 ‘작명의 달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준호 회장은 푸르밀로 사명을 바꾼 뒤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푸르밀은 1995년 대표 상품인 요구르트 ‘비피더스’, 2003년 ‘검은 콩이 들어있는 우유’ 등을 내놨지만, 이후 기존 제품을 파는 데 주력하는 보수적인 모습을 보였다. 작년 초 신준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49) 대표이사가 취임해 푸르밀은 다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신정희 사장이 이끌고 있는 동화면세점은 1973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빌딩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시내 면세점이다. 중견 면세점이지만 3대 명품이라 불리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을 입점시키며 급성장해왔다. 2015년까지는 국내 시내 면세점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세계와 한화, 두산 등 대기업 면세점이 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동화면세점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수년간 실적이 떨어져 명품 브랜드들이 철수하고 영업시간도 단축되며 2017년에는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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