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후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을 둘러싼 찬반 집회가 서울 도심에서 이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세 대결’ 양상까지 띤 두 진영의 집회에는 참석자의 숫자만큼 다양한 형태와 표현을 담은 피켓이 등장하고 있다. 조국 사태 초반 ‘검찰 개혁’ 이나 ‘조국 사퇴’와 같이 구호 위주이던 피켓은 조국 일가에 대한 구속 심사와 검찰의 항명 논란 등으로 갈등이 첨예해 질수록 상대 진영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조 전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해골과 죄수로 묘사하거나 ‘개싸움’ ‘빅엿’과 같은 과격한 표현으로 도배된 피켓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은 둘로 쪼개진 채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검찰은 개, 윤석열은 죄수… 진보의 피켓
‘조국수호 검찰개혁’ ‘검경수사권 조정하라’ ‘정치검찰 물러가라’ 등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내용의 피켓이 주를 이룬 진보 진영의 집회에선 점차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개와 달, 촛불 등이 글자 혹은 그림으로 삽입됐다.
특히,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는 검찰을 ‘개’ 또는 ‘개검’으로, 검찰 개혁을 향한 투쟁을 ‘개싸움’으로 표현한 피켓이 자주 등장했다. ‘검찰개혁’ 중 ‘개’ 부분을 개 그림으로 대체하거나 ‘개싸움은 우리가’라고 쓰기도 했다. 여기서 ‘개싸움’은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항해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라는 제목의 글에서 따 온 듯 하다. 당시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한 표현인 만큼 검찰개혁 또한 국민이 스스로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다분히 자극적이고 공격적이다.
누가 봐도 윤 총장이 연상되는 그림을 그려 넣은 피켓도 눈에 띈다. 검찰 로고를 감옥 창살로 표현하고 여기 갇힌 죄수로 윤 총장을 등장시키거나 ‘정치검찰 물러가라’는 문구 중 ‘ㅊ’을 윤 총장의 실루엣으로 대체한 경우도 있었다.
그 밖에 ‘조국 수호’ 중 ‘ㅎ’ 부분에 그려 넣은 초승달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조 전 장관을 임명한 문 대통령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개혁’ 위에 촛불을 덧붙인 피켓도 눈에 띈다.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염원과 개혁 추진 상황을 지켜보며 언제든 촛불을 들 수 있다는 경고로 보인다.
#조로남불, 가카XX… 보수의 피켓
반면, 조 전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보수진영의 집회에서는 주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차용한 ‘조로남불 내려와라’를 비롯해 ‘조국 감옥’ ‘조국 STOP’ ‘조국 구속 문재인 퇴진’ 등이 주로 피켓에 실렸다.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영장실질심사 당시 보수 단체 집회에 ‘가카XX 짬봉 빅엿하던 판사 XXX 퇴출하라’는 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가카XX’와 ‘빅엿’ 등은 팟캐스트 ‘나꼼수’를 비롯한 진보진영의 유행어를 역으로 차용한 비하 표현이다. ‘가카XX 짬봉’은 각하(閣下)를 발음대로 적은 가카에 ‘나가사키 짬뽕’을 합성한 것으로 대통령의 조롱하는 의도로 보이고, 빅엿은 영어 ‘big’과 한글 ‘엿’을 합해 ‘엿 먹어라’는 뜻의 욕설 패러디로 해석된다. 2011년 서기호 당시 현직 판사가 SNS에 “쫄면을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 푸하하”등의 글을 올린 적이 있고, 이정열 판사는 ‘꼼수면’과 ‘가카XX 짬뽕’이란 패러디 사진 2장을 SNS에 게재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10월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린 우리공화당의 집회에서는 조 전 장관과 문 대통령을 ‘죄국’ 또는 ‘문죄인’이라고 쓰고 해골을 그려 넣은 지명수배 피켓도 등장했다.
조국 전 장관 자녀의 입학 비리 논란을 꼬집는 대학생들의 피켓은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한 데 대한 절망적 표현이 담겼다. 지난해 고려대 민주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라고 쓴 피켓이 영정으로 등장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인용해 조국 사태로 인해 공정과 정의가 죽었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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