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인문학 위기론’이 등장한 것은 오래 전이다. 21개 국공립대 인문대 학장들이 인문학 위기를 환기하며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던 ‘인문학 제주 선언’을 내놓은 것이 이미 20여년 전인 1997년이다. 그 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 인사말이 농담으로 회자되는가 하더니 스티브 잡스 이후엔 돈 좀 되는, 한 권으로 다 정리해버릴 수 있는 때 아닌 ‘인문학 부흥’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인문학, 괜찮은 걸까.
민음사가 새롭게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두꺼운 논문으로서의 인문학과 가벼운 대중적 인문학 사이에서 인문학의 본령을 다시 생각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말 그대로 ‘한편’의 짧은 글들을 모아 새로운 인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철학, 문학, 문학 등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인류학, 역사학, 정치학, 인구학, 미학, 철학 등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청탁한 글을 모았다. 200자 원고지 30매 안팎의 짧은 글 열 편을 모아 만든 이 잡지의 가격은 1만원.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판형을 갖췄다.
창간호 주제는 ‘세대’다. 88만원 세대에서부터 삼포 세대, 생존주의 세대로 이어지는 세대 꼬리표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에서 ‘세대’ 문제를 짚었다.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의 저자 이민경은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의 여성들을 ‘탈코르셋 세대’로 명명한 뒤 이들의 탈코르셋 행위를 탐색한다. 기후위기 활동가 정혜선은 ‘미래세대의 눈물과 함께’를 통해 기후위기에 가장 정직하게 대처하는 청소년 세대에 주목한다. ‘청년팔이’의 저자인 문화연구자 김선기는 말 그대로 기성세대에게 청년을 그만 팔라고 하기 보다, 또래 활동가들이 스스로를 대표하는 방식을 모색한다. 각각의 글들은 ‘세대론’으로 묶여 제대로 다뤄지거나 세밀하게 분석되지 않았던 세대 안의 세대를 들여다본다.
‘한편’은 ‘세대’를 시작으로 연 3회 출간된다. 5,9월에 발간될 다음 호의 주제는 각각 ‘인플루언서’와 ‘환상’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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