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운전사 황준노씨, 카풀ㆍ타다 위기감 “혁신방해 세력 취급”
한때 1억 호가 면허가격 급락… “면허가 퇴직금인데 앞날 불안”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에서 37년차 택시기사 황준노(78)씨가 잠시 운행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 있다. 김현종 기자

택시기사 황준노(78)씨의 택시 안 일상은 37년 전 택시 운전대를 잡을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정갈한 복장과 친절한 태도로 승객을 맞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또 다른 승객을 찾아 나선다. 설을 열흘 앞둔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에서 젊은 승객을 태운 황씨가 차창 밖을 응시하며 한 마디 툭 던졌다. “택시 안은 변한 게 없어도 택시 밖은 무섭게 변했다.”

무엇보다 택시업계를 둘러싼 환경 변화에 황씨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수년간 택시를 위협한 스마트폰 기반 ‘카풀’에 이어 지난해에는 기사가 포함된 형태의 렌터카 공유서비스 ‘타다’까지 등장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는 기득권이라는 말을 들을 때가 제일 가슴 아프다”는 황씨는 “택시 한 대로 자녀 셋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는 자부심도 불안한 현실 앞에서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개인택시 운전자의 3분의1 이상(5만9,806명, 전체의 36.8%)이 65세를 넘었다. 택시 업계 또한 고령화 사회의 영향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지만 고령운전자를 바라보는 손님들의 시선은 따갑기 그지 없다.

게다가 평생의 자산인 개인택시 면허가격마저 떨어지고 있다. 1억원을 호가하던 면허가격은 옛 일이 됐다. 택시 면허가격이 10분의1로 급락해 운전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 미국 뉴욕시의 사정이 황씨에게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열심히 달리면 잘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는커녕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다”는 황씨. 평생 운전대를 잡고 남은 게 개인택시 면허 하나뿐이라는 그의 음력 세밑이 우울한 이유다.

[저작권 한국일보] 서울 개인택시 면허 가격 변동/ 강준구 기자/2020-01-22(한국일보)
◇다들 그랬듯 앞만 보고 달렸다

한국전쟁 때 남으로 피란을 내려와 부모를 여읜 황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면허 소지자가 68만명에 불과했던 1973년이다.

처음 10년은 용달차를 몰다 지인의 권유로 차를 팔고 1983년 12월 1,170만원에 개인택시 면허를 샀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아파트 전세가 1,900만원일 때다. 황씨는 “기간이 정해진 ‘한시 면허’였는데 정부에서 영구 면허로 전환해줬다”면서 “택시기사가 떠오르는 직종으로 장려 받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택시 운전은 신나는 일이었다. 합승도 하던 때라 수입이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부류의 손님을 만나는 맛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 것’이란 게 존재했다. 황씨는 “이전엔 자영업을 하다 망하기도 하고 일감을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어쨌든 택시는 차와 면허가 내 것이고 손님도 꾸준히 있어 좋았다”고 회상했다.

한참 자녀 셋을 키울 땐 하루에 18, 19시간씩 운전을 했다. 황씨는 “조금만 건드려도 피가 나올 정도로 손바닥 가죽이 얇아졌다”고 말하며 양손을 비볐다. 건강이 나빠져 50세 무렵엔 일 하는 시간을 12시간으로 줄였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내 인생 내가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앞만 보고 달리며 버틴 인생. 아내가 파킨슨 병에 걸리고, 자신은 대장암 투병을 한 힘든 시기를 거치며 1억원까지 불었던 빚도 이제 거의 다 갚았다. 지난해 아내가 먼저 눈을 감은 뒤 경기 남양주시의 월세 15만원짜리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황씨는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이가 있는 주변 개인택시 기사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개인택시 면허 값이 지속적으로 추락하는 가운데 최근 승차공유업체까지 등장하면서 개인택시 운전자들이 예년 같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심야시간 서울역 인근에 길게 늘어선 택시승강장에서 한 승객이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물어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운전석’은 똑같은데 세상은 변했다

그런 황씨가 최근에는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우선 승객이 부쩍 줄었다. 격일로 12시간을 일하면 10만원을 겨우 손에 쥘 정도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카카오택시 앱은 조작이 어려워 잘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택시기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조심스럽다. 그는 “최근엔 혁신을 방해하는 세력 취급을 받는 거 같다”며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 비난을 하니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가장 큰 걱정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상 ‘개인택시운송사업면허’ 가격이다. 기사들에겐 일종의 ‘퇴직금’인데 3년 전부터 값이 떨어지더니 계속 하락세다. 황씨는 “집도 없이 이거 하나 남았는데 심란하다”며 “오죽하면 작년에 개인택시 기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개인택시 면허는 지방자치단체가 시험을 거쳐 무료로 발급하기도 하지만 기회가 적어 거의 개인 간에 거래된다.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되는데, 카풀이나 타다 같은 전에 없던 모빌리티의 등장과 맞물리며 변동폭이 커졌다. 특히 새로운 모빌리티가 쏟아지는 서울을 중심으로 면허가격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김기용 서울택시랜드 대표에 따르면 서울 개인택시 면허가격은 3년 전인 2017년 9월 9,700만원이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카풀 스타트업 럭시를 인수한 이후인 2018년 6월에는 8,600만원대로 떨어졌고, 같은 해 10월 타다가 등장한 뒤에는 하락세가 더 가팔라져 지난해 5월 6,400만원까지 내려갔다.

카풀 운행시간을 규제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8월 이후엔 7,400만원 선을 회복해 현재까지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야 2015년 수준이다.

국내에서만 면허가격이 주저앉은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뉴욕시가 5,800억원에 이르는 택시기사들의 빚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빚을 내 산 면허(메달리온) 가격이 급락해 택시기사들의 극단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자 나온 대책이다. 2014년 11억원에 달했던 뉴욕의 메달리온 가격은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 등이 세를 넓히면서 지난해 7월 1억6,000만원 수준으로 10분의 1 토막이 났다.

국내에서도 뉴욕 택시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차순선 전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은 “모빌리티 사업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개인택시에 대해선 뚜렷하게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 역시 “플랫폼 운송 사업자들이 택시 면허를 사도록 규제해 되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면서도 “명확한 게 없어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개인택시만의 책임은 아니다

지난해 2월 시행에 들어간 ‘고령자 자격심사 강화’는 또 하나의 뇌관이다. 정부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만 65세 이상 택시기사는 3년마다, 70세 이상은 매년 운전능력을 확인하는 자격유지검사를 받도록 강제했다. 고령자들의 탈락이 늘어나면 개인택시 면허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개인택시 기사 유효종(69)씨는 “자격심사에 탈락한 고령자들의 면허가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가격이 급락하는 게 아닌가 걱정부터 된다”고 말했다.

강제 퇴출되는 고령의 택시기사 구제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서울시와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은 2016년 시내 택시 수를 줄이기 위해 택시 면허를 반납하면 7,0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였다가 철회했다. 당시 서울시가 대당 1,300만원, 조합이 5,700만원을 부담했다. 조합 관계자는 “50대 감축에 24억원이나 들었다. 그 많은 돈을 조합이 감당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면허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하는 문제라 현재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개인택시 면허가격 하락에 정책과 사회구조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더라도 개인의 투자 성격을 부정할 수 없어 보전해주는 것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구제안을 검토하는 뉴욕에서도 마찬가지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은 사안이지만 전문가들은 최소한 고령의 택시기사들이 연착륙할 수 있는 공간은 열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간 택시정책을 시행한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탓이다. 송제룡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재의 택시업계 상황은 정부가 2005년부터 시행한 택시총량제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결과”라며 “더 악화되기 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인택시조합 등과 적정 보상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2000년대 초반 정부와 지자체들이 무리하게 면허를 발급했다”며 “가격 급락이 현실화하기 전에 대응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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