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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 서울 외교가에서 자주 회자되는 ‘비호감’ 외교관 3명이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그리고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그들이다. 인물별 호불호에 따라 한반도 평화가 좌우되는 것은 아니나, 유독 이들의 말과 행동은 동티를 내며 도마에 올랐다.
김계관이 누구인가. 지난해 4월 제1부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30여년 북한 외교라인의 산 증인이다. 1994년 제네바 핵합의부터 2005년 6자회담 9ㆍ19 공동성명,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까지 북핵 협상 앞뒤에서 한ㆍ미 외교관들을 그리도 괴롭히더니 최근에는 기명 ‘담화’로 말빚을 쌓고 있다.
새해 북한의 첫 공식 입장을 알린 11일 담화에서 그는 ‘설레발’, ‘멍청한 생각’ 같은 격한 표현으로 남측의 노력을 깎아 내렸다. 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외무성이 주도권을 잡더니 남북관계까지 북미ㆍ북핵협상의 아래에 두고 흔드는 상황이다.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할 노릇’ 같은 이전 비하 표현보다는 순화됐다지만,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비방 선전전에 이런 베테랑이 동원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해리스 대사의 구설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연장을 둘러싼 “한국에 실망했다” 반응, 야당 정치인들에게 했다는 방위비 인상 언급, 또 대통령의 신년사에 재를 뿌린 인터뷰 발언이 대표적이다. 북미 협상을 이야기하는 대사가 “필요하다면 오늘밤이라도 (북한과) 싸울 준비가 돼 있다” 라고 한 건 외교적이지 못했다.
미국을 대표해 파견된 외교사절인 만큼 정책 기조를 그대로 전하는 것도 대사의 임무이긴 하다. 태평양사령관까지 지낸 군인 출신의 원칙론이 묻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주재국 국민의 마음을 사는 ‘공공외교’에선 실패하고 있다. 부임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한국민 뇌리엔 친근함보다는 거친 언사가 주로 남아 있다. 차라리 드럼 치고, 반려견 산책시키며 인심을 사던 전임 대사들이 그립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두 사람이야 다른 나라 공직자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김현종 차장은 문제가 다르다. 한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대통령이 외교안보에서 점수를 조금 따놓으면 김 차장이 다 까먹는다”고 혹평했다.
지난 한 해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 게 전적으로 김 차장 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임명 후 유독 잡음이 잦았다. 본인이 직접 사과했을 정도로 노출된 불화, 현장 외교관을 향한 갑질 논란, 외교안보 전술 실책 책임론, 궁극적으론 외교안보 팀워크가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한 책임은 크다. 게다가 최근 광화문과 여의도에 나돌던 온갖 외교안보라인 인사설 혼란의 중심에도 그가 있었다.
통상문제에 최적화된 능력자고, 유엔대사 경험도 있다지만, 외교 전략을 짜고 부처 간 현안을 조율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청와대 방문 때 처음으로 명함을 건네던 김 차장 사진이 상징적이었다. 북핵 외교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왕 부장과 북한 문제 초보 김 차장의 경력이 너무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외교안보 분야 상징이라는 이유로 야당에게 과하게 공격을 받았다. 김 차장도 비슷한 처지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전 장관 정도의 통찰과 실행력, 믿음은 주지 못하면서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를 그가 다 주무른다는 이미지만 남긴 것은 모두에게 부담이다. 여권 내에도 비판 기류가 많지만 “대통령이 그를 신뢰한다더라” 한 마디로 넘어가는 건 아니라고 본다.
문 대통령은 새해 들어 남북관계 개선 카드로 북미협상 교착 상태를 뚫어보겠다고 했다. 외교안보라인 쇄신을 통해 북ㆍ미 양국에 메시지를 던질 수는 없을까. 김 차장 스스로 인사권자에게 부담을 주는 ‘민폐 캐릭터’ 아니었는지 자성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정상원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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