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인터뷰
“건보재정 우려보다 중증질환 예방ㆍ비급여 감소 등 긍정 측면 봐야”
모든 의학적 비급여의 건강보험 적용을 목표로 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문케어)는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책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이 정책에 찬성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17~2018년 보장성 강화에 2조4,000억원을 투입했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총 의료비에서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이 62.7%에서 63.8%로 1.1%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7년간 이어진 건보재정 흑자 행진도 2018년 적자로 돌아섰다. 문케어 2년차에 접어든 지난해에는 자기공명영상(MRI), 소아충치 관련 시술 등 보장성이 강화된 일부 항목에서는 과잉진료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문케어의 설계자로 꼽힌다. 김 이사장을 만나 문케어의 지속가능 전망, 보장성 강화와 재정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방안을 물었다. 김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1984~2013년)를 역임하며 ‘김용익 사단’으로 불리는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등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진보 성향 의료정책가들을 배출했다.
-MRI 급여 확대 이후 과잉진료가 포착되는 등 문케어 재정에 대한 우려가 크다.
“예상보다 MRI 검사량이 많아진 이유를 따져봤는데, 처음 예측이 저추계가 됐던 것 같다. 조금 더 과학적인 추계를 했어야 한다고 반성하고 있다. 다만 모두 과잉진료라고 볼 수는 없다. 그동안 MRI를 찍을 필요가 있어도 찍지 못하다 가격이 낮아지니 찍게 된 부분이 있고, 불필요한데 과잉으로 찍게 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문케어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는 급여를 주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에 급여를 확대하면 사용량이 늘어가는 건 정상적이다. 불필요하게 늘어난 부분을 조금 더 예민하게 감시하기 위해 복지부와 모니터링 강화 방안을 만들고 있다.”
-올해 건강보험료율이 6.67%인데 몇년 내 법정 상한선인 8%에 육박할 것 같다. 양도소득이나 상속소득에 대한 건보료 부과 등 새 재원 확보 방안은 있나.
“양도ㆍ상속소득은 재산적 성격이 강해 아직까지는 건보료 부과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지역가입자의 재산보험료와 자동차보험료 축소 등을 골자로 한 부과체계 개편 1단계가 2018년 끝났고, 2022년 시행 예정인 2단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2단계는 소득 중심성 강화, 지역ᆞ직장가입자의 형평성을 맞춘다는 큰 원칙 아래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에 대한 건보료 부과는 올해 중 가능할 것으로 본다. 건보가 집중해서 노력할 부분은 국민을 최대한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건보 수요도 줄어든다. 국가건강검진, 건강인센티브(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체중ㆍ혈당ㆍ혈압 등 지표가 개선될 경우 본인부담금 감면) 도입 등 문케어는 단순히 건보 급여를 늘리는 정책은 아니다.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를 중시한다.”
-문케어는 왜 조기 진단, 조기 치료를 중시하나.
“조기 진단ㆍ치료 시점을 놓쳐서 중증질환이 되면 비용이 커져 본인에게도, 건보재정에도 악영향을 준다. 건보 보장성이 낮은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중증질환 발생률을 높이고 비급여를 팽창하게 한다. 문케어 반대론자들은 건보재정이 커지는 것만 걱정하는데 중증질환이 예방되고 비급여가 줄어드는 측면을 봐야 한다. 2017년 65만8,000명에 달했던 고액의료비 환자는 2018년 57만2,000명으로 줄었고, 1인당 상위 30대 고액ㆍ중증질환 건보보장률은 같은 기간 79.7%에서 81.2%로 높아졌다. 적절한 사례는 아닐지 몰라도, MRI 과잉진단 문제도 그렇다. 내 주위에서 MRI 촬영으로 뇌종양을 우연히 발견했다는 사람도 있다. 병이 커진 다음 수술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건보 보장률 통계를 낼 때 치료 목적 외의 불필요한 비급여를 총의료비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을 하셨다. 문케어 목표인 보장성 70%를 맞추기 위한 편법 아닌가.
“어떤 통계든 중간에 지표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경우에는 원래 방식 지표로 낸 통계와 새로운 지표로 낸 통계를 동시에 공개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 예산의 경우, 전에는 중앙정부 예산만 생각했는데 이후 지방정부 예산과 건강보험 같은 공공서비스 예산도 포함되는 식으로 개념이 변했다. 치료목적으로 분류하기 힘든 마늘ㆍ백옥주사 같은 영양주사를 총의료비(보장률의 분모)에 넣을 이유가 있을까. 불필요한 항목을 지표에 넣으면 보장률 개념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어 변경하려는 것이지, 꼭 70%를 맞추려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 임기 내 보장률 70% 달성이 가능하다고 보나.
“나는 70%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가 전부 급여화됐는지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만 급여 안으로 들어오면 보장률을 70~80%로 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비급여를 급여로 끌어들이는 건 시스템 개혁이다. 비급여를 끌어들인 뒤 보장률을 높이는 건 지표 개혁이라 어렵지 않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끌어들이느냐가 문케어 성공의 관건이다.”
-민간 보험사들은 문케어 풍선효과(의료이용 증가로 실손보험 이용도 증가)로 실손보험료 인상을 주장한다.
“실손보험 쪽에서 건보 때문에 손해 봤다는 주장은 이런 식이다. 예컨대 100이었던 MRI 가격을 (건보에서) 30으로 책정했다면, 실손 쪽에서는 30으로 가격이 내려가 많이 찍었고 이용건수가 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격이 내려간 부분과 의료량이 늘어난 부분은 계산해봐야 한다. 실손 쪽에서는 이 수치를 알면서도 영업비밀이라고 내놓지 않는다. 실손이 비급여를 팽창시켜 건보에 악영향을 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건보가 실손에 미치는 영향은 판단할 수 없다.”
-보장성이 높아져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은 여전하다.
“MRI를 찍을 필요가 있으면 찍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MRI를 찍을 필요가 없을 때 의사가 스스로 찍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점이 답답하다. 문케어는 건강보험 급여ᆞ수가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동시에 의료 전달 체계를 바꾸는 작업도 수레의 두 바퀴처럼 진행돼야 하는데 한 쪽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고 있어 잘 구르지 않는 것이다. 보장성 강화가 너무 빨라서 잘못되는 게 아니라 다른 쪽 바퀴가 잘 돌아가지 않아 문제다.”
-전달 체계 개선은 아주 오래 전부터 거론된 문제인데 잘 안 된다.
“서울대병원 교수들도 나한테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3차 기관(상급종합병원)에서 3차성(중증환자)이 아닌 환자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1,2,3차 기관이 서로 합의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의료전달체계 논의를 하다 무산됐지만, 문케어가 진행되니 점점 더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의료기관들이 확실히 선을 긋는 합의를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인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 1,412개(2019년 8월 기준)만 참여하고 있다. 너무 더딘 것 아닌가.
“의사들은 정부와 일 하는 걸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 참여율이 낮다. 만성질환이나 노인성질환 관리 문제 등은 종합적으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와 연계해 풀어야 할 것 같다.”
-결국 경제적 인센티브가 중요하다. 의료전달체계를 바꿀 구체적 방법이 있나.
“만성질환 관리를 의사들에게만 맡기면 쉽지 않다. 고혈압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는 건 의사가 할 수 있지만, 고혈압 관리의 바탕인 식단ᆞ운동 관리는 팀(의사-간호사-간호보조인력)을 조직해 풀어야 한다. 이게 커뮤니티 케어인데, 이러려면 간호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이들을 ‘개미군단’이라고 비유할 수 있는데, 그 개미군단과 보건소 또는 동네병원 의사들이 협력할 수 있게 팀을 만들어 주고, 협조하는 부분에 대한 대가를 주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1,2,3차 의료기관만 생각하는데 그 아래 0차 의료체계가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환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의사들도 쉽게 만성질환 관리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국민들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가정방문 서비스의 장점을 알게 됐다. 내 건강관리가 그런 방문서비스를 통해 가능해진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퇴원 환자들의 사후관리도 방문간호사가 할 수 있다. 입원환자들은 빨리 퇴원하고 싶어하는데, 이들이 집에서 돌봄을 받으면 환자에게도 좋고 (입원료가 절감돼) 건보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0차 의료체계를 잘 발전시키면 건보재정도 절감하고 국민들에게는 훨씬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다.”
-간호ㆍ상담 인력은 충분한가.
“간호 인력은 전체 숫자가 적은 게 아니라 활용에 문제가 있다. 간호를 너무 홀대하다 보니 노동 강도가 너무 세지고, 노동 강도가 강해지니 이직률이 높고, 다시 노동 강도가 더 세지는 악순환에 빠진 거다. 소위 장롱면허가 많은데, 일을 하지 않는 40대 간호인력을 방문간호 쪽으로 활용한다면 상당수가 돌아올 것 같다.”
-커뮤니티 케어 확산에 건보공단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건보공단 하면 사람들이 건물 하나 있다고만 생각하는데 전국에 6개 본부, 178개 지사가 있다. 시군구 숫자와 맞먹는 전국 조직이다. 시군구 지자체 복지요원, 보건소 간호사들, 건보공단 지사직원이 지역사회 내 방문복지, 방문보건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까를 기획하고 함께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건보공단이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을 요구하고 있다는데.
“전국에 사무장 병원이 700개가 넘는데, 100명씩만 입원해 있다고 쳐도 입원환자가 7만명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건보재정이 1조원이 넘는다. 7만명이 사이비 의료기관에 들어가 있다는 건 심각한 사회문제 아니냐. 국민인권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의료계 일각에서 김 이사장이 ‘의료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하는데….
“익숙해서 아무 느낌이 없다(웃음). 사회보장제도는 국민들이 신뢰해줘야 유지가 되는 제도다. 너무 비용문제가 부각돼 국민들이 복지제도를 혐오하게 만들면 제도 지속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언론이 국민과 사회보장제도를 맺어주는 역할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인터뷰=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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