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꿈에는 부정문(否定文)이 없다

알림

[김정진 교수의 마음거울] 꿈에는 부정문(否定文)이 없다

입력
2020.01.20 19:00
수정
2020.01.20 21:32
22면
0 0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시애틀은 유명한 커피전문점의 원조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지금 중년들에게는 올해 초에 열린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톰 행크스(1956~ )가 주연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1993)’을 통해서 익숙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랑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 하는데, 누구나 흥분 상태에 있으면 불면증을 경험할 수 있다. 대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과잉 활성 때문이다. 마약을 하거나 정신병 증상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경전달물질들은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물질들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기 때문에 불안이나 우울 등 거의 모든 정신질환은 불면증을 일으키게 된다. 섭취하는 물질 중에서 알코올은 깊은 수면을 방해하고,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은 신경을 흥분시켜 잠이 드는 걸 방해한다. 커피로 유명한 시애틀과 잠 못 이루는 밤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잠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보다 잠을 안 자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짧다. 그리스 신화에서 잠의 신 히프노스(Hypnus)의 아들은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다.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수면시간이라면 누구나 4~5번 정도의 꿈을 꾼다. 다만 각자의 수면상태에 따라 깨고 나서 꿈을 기억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잠을 잘 때 꿈을 꾸는 수면인 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은 깊은 잠 못지 않게 중요하다. 하루를 지내면서 받아들인 오만 가지의 감각적 자극과 감정, 생각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갈등들을 꿈을 통해 걸러내고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일수록 REM 수면 시간이 길다. 새로 들어온, 처리해야 할 정보가 더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를 심리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꿈을 통해 불편한 내용들을 걸러내는데, 이것은 음식을 먹고 소화해서 배설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과정이다. 영화제에는 편집상과 각색상이 있다. 사람들의 꿈도 각자 상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편집되고 각색된다. 이는 온전히 무의식적인 과정이므로 웬만한 해석으로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우리가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꿈도 꿈을 깨는 과정에서 이미 모양새와 내용이 바뀌어 버린다.

인지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걸러지지 않은 정신활동의 부산물들은 뇌의 은밀한 기억창고로 옮겨진다. 마음 한 구석에 비밀의 방, 즉 무의식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피에르 자네(1859~1947)는 마음은 각자의 지나간 기억의 지배를 받는, 무수히 복잡하고도 목표지향적인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사람마다 자신의 비밀의 방에 무엇을 채워 넣는지는 본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 자네와 동시대를 살았던 정신분석가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각자의 무의식이 각자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하였다.

꿈은 과거나 현재의 실제 내용뿐 아니라 이루고 싶은 소원도 포함한다. 꿈은 결코 직설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다. 매우 은유적인 표현을 하기 때문에 보통의 방법으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다. 시간의 제약도 없고 부정적인 표현은 인식하지 못 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의지가 의식의 범위를 벗어날 때 부정적인 내용은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을 꾼다”고 말할 때의 꿈은 잠을 잘 때 꾸는 꿈과 동시에 미래의 희망을 뜻한다. 새해를 여는 첫 명절에는 한 해의 소원을 빈다.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긍정문을 쓰는 것이 좋다. “가난해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가 아니고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로 하는 것이다. 꿈에는 부정문이 없다.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정진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